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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an 15. 2022

회사와 행복의 상관관계

내가 왜 이 회사에서 행복하지 않을까.

일주일에 한 번씩만 출근을 하다 지난주부터는 아예 일주일 내내 재택근무를 하며 여유를 누리고 있다. 게다가 내게 맡겨진 업무도 그리 강도 높은 업무가 아니어서 매일 같이 야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한동안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던 반바지(본부장)도 이제 한풀 꺾여 내게 조심스럽게 말을 하려 애쓴다. 이렇게 보면 연봉도 적지 않고 복지도 좋은 이 큰 회사가 왜 나는 만족스럽지 못한 걸까.

 혹시 처음부터 날 미워하기로 작정한 몇몇 사람들에게 겁을 먹은 걸까 생각도 해봤다. 지레 겁을 먹고 그들과 맞닥뜨리는 것이 부담스러워 뒷걸음질 치는 것일까. 아니면 애초부터 없던 것을 억지로 끼워 맞춰 만든 이 자리의 구조적인 한계를 이겨낼 수 없을 테니 일찌감치 접자라고 생각한 것일까.


곰곰이 따져봤다.

그냥 지금 이대로 편한 상태를 만끽하며 받는 월급에 만족하며 다닐 수도 있을 텐데 무엇이 날 이렇게 마음 못 붙이게 만드는 걸까.


난 애초부터 루틴을 거부하는 사람이었다.


틴은 어제 하던 일을 오늘 반복하는 것이다. 편하고 안정감 있는 그 단어가 주는 탄탄함이 있다. 그러나 그 루틴에 한번 맛을 들이면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건 중력을 거스르는 것만큼 힘든 일이 된다. 아보면, 편안하고 안정적인 자리를 박차고 금은 귀찮고 힘든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보려는 시도가 지금의 날 있게 했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이 자리는 내게 전혀 지적인 자극을 주지 못한다. 내가 여태껏 쌓아온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일과 동떨어져있을 뿐만 아니라 매일 일회성으로 소모되고 마는 업무에 내 자신마저 소모되는 느낌이 들곤 한다. 렇게 매일 성취감 없는 업무에 매달리다 보면 앞으로 어떤 비전을 꿈꿔볼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여지조차 남지 않는 기분이다. 지금 하고 있는 업무가 날 발전시키기보다 오히려 후퇴시킨다는 생각에 이곳에 있는 하루하루가  조바심이 다 날 지경이다. 언제나 내게 다른 직장을 힐끔거리게 만든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거였다.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확신.


 그런데 이런 마음을 품은 건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직장인들이 익명으로 가입하여 얘기를 주고받는 한 앱의 조사에 따르면 회사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답한 이유 중 하나가 본인의 업무가 자신의 성장과 연관이 없다고 느낄 때라고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업무가 내 경력 계발과 동떨어질 때 아무리 놓은 연봉과 좋은 복지제도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좋은 직장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회사에서 중요시 여기는 것들의 경중이 다 다를 것이다. 월급만 많이 받으면 다른 건 아무것도 상관없고 삶의 재미와 성장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다른 일을 하며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통계를 보니 나처럼 인생의 3분의 1을 보내는 직장에서 성취감과 성장을 담보로 하지 못하는 업무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또 한 가지 이곳을 떠나야겠다 마음먹은 이유는 바로 외로움이다. 언제나 크던 작던, 팀에 소속되어 팀원들과 협력하며 일을 해왔다. 함께 아이디어를 모으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가끔은 신경전도 했지만 업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을 때의 기쁨도 함께 누렸었다. 이렇게 사람들과 소통하며 함께 일하는 과정도 성장의 큰 축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곳에선 모든 것을 나 혼자 해야만 한다. 반바지의 욕심으로 옆 본부에 있던 포지션을 뺏어와 억지로 만들어 놓은 이 자리는 그 덕에 함께 일해야 할 사람이 모두 옆 본부에 있다. 처음엔 물론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라 믿고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그런 여지를 내어 주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그들의 업무를 뺏어가는 사람으로 인식한 듯 아무 자료도, 마음도 내어주지 않았다. 처음엔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봉합될 거라 여기며 없는 자료는 스스로 만들고 모르는 건 조금이라도 이 업무에 관여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물으며 배우려 애썼다. 하지만 애초에 구조적인 결함을 갖고 있는 이 상황은 내 힘으로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입사 후 두 달간 몰아치듯 사람을 달달 볶을 때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뭔가  와중에도 배울 것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원 심지어 인턴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업무만 내게 남겨진 현실 앞에 커다란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대는 날 보며 왜 자꾸만 이 팀에서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떨어져 나가는지 진심으로 알게 되었다. 매주 금요일 화상으로 열리는 위클리 회의. 가장 친한 과장이 챗을 보낸다. "차장님, 요즘 또 다른 퇴사자가 있다는 얘기가 있던데... 만약 차장님이신데 제가 모르는 거면 엄청 배신감 느낄 거예요." 엄청 뜨끔한 마음을 감추고 "어... 저는 아니에요. 아직은.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말씀드릴게요. 물론이에요." 대답하고 나니 묘한 기분이 든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채비를 갖추고 심지어 짐까지 완벽하게 싸놓은 기분으로 매일 책상 앞에 앉는 이 상황이 나라고 달가울 리 없다. 안정되지 못한 이 시간이 어서 지나가길, 내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람들과 웃으며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어서 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자판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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