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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an 25. 2022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 어렵지만 꼭 필요한 일

 3주 간의 재택근무가 따분해질 때쯤 출근한 회사. 그 사이에 또 두 명이 짐을 싸고 있다는 소식이 내 귀에 먼저 들어온다. 덕분에 팀을 책임지는 상무는 상반기 승진에서 미끄러졌고 안 그래도 뒤숭숭한 분위기는 한층 더 어두워졌다. 연말과 연초에 팀의 중추 역할을 하던 꽤 오래된 연차의 직원들이 우르르 사표를 내며 이제 3년 차 부장이 연차로나 직급으로나 우리 팀의 왕고가 되었다. 이젠 놀랄 기운도 없어 그러려니 하게 된다.


  3주 만에 얼굴을 보인 내게 팀장의 면담 요청이 들어온다. 잔뜩 풀 죽은 팀장의 얼굴을 보니 나도 마음이 좋지 않다. 그 또한 입사 10개월 차의 뉴페이스. 입사 하자마자부터 겪고 있는 이 난리통의 책임자로 손가락질받고 있다. 어느 누가 이 상황에 심란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는 오래 얼굴을 보이지 않 나도 은근히 걱정되는 눈치다. 업무는 괜찮냐며 내 직속상관인 반바지(본부장)의 관계는 어떠냐며 조심스레 묻는다. 할 말도 많고 하소연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의 처진 어깨에 내 봇짐마저 얹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다고 잘 지낸다고 거짓부렁을 늘어놓을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저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근하는 날까지는 최선을 다하겠다며 솔직한 마음을 내보였다. 적어도 이렇게 해야 나중에 사표를 내도 뒤통수친다는 소리는 안 들을 것 같다.


 오랜만에 출근하니 평소엔 데면데면하던 동료들도 웬일인지 반갑게 웃어준다. '오랜만이라며 잘 지냈냐'라고 안부 한 마디씩 건네주니 갑자기 중요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다. 게다가 마음 맞는 동료와 수다 떨며 먹는 점심 어찌 그리 맛나던지... '역시 남이 해 주는 밥이 최고'라며 엄지 척 치켜들고 활짝 소리 내어 웃는 내가 낯설면서도 싫지 않다.


 사무실을 둘러보니 생각보다 빈자리가 많지 않다. 그만둔 직원 자리를 충원하기 전 급하게 뽑은 인턴들만 7명이란다. 오미크론으로 다시 강화된 재택근무 탓에 사무실은 재택근무 대상이 아닌 인턴들만 우글거린다. 이름조차 외우기를 포기해버린 그 인턴들에게 사뭇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내 옆자리엔 신년 초 한 번밖에 못 본 새로 입사한 대리가 앉아있다. 지금쯤 분명 내가 겪었던 것처럼 정신없고 황망한 일 투성일 텐데, 내 코가 석자인 나는 그에게 따뜻한 한마디 건네줄 마음의 여유없다.


 내가 나 일 수 없는 이 상황이 정말 싫다. 

낯선 이들에게 따스한 말을 건네고 힘든 이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며 응원하는 것이 나인데, 시니컬한 표정으로 그들과 거리를 두고, 이 사무실을 탈출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허나 정작 이 사단의 원인이 되는 반바지는 여전히 남 탓을 한다. 본인은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이게 전부 남 탓이라며 책임을 회피할 생각만 하고 있는 그에게 이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사람이 가진 능력과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려면 먼저 그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현성운 <왜 유독 그 가게만 잘 될까>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다 아는 것을 몇 천명의 직원을 거느린 기업의 임원이 왜 모르는 걸까. 직원들은 자신을 쓰다 버린 휴지보다 못하게 여기는 그에게 진절머리를 내며, 이곳에서는 희망이 없다 말하는데 수십 명의 직원이 처절하게 뱉고 떠난 이 말은 닿을 곳 없어 정처 없이 떠도는 메아리가 될 뿐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 동굴 속에서도 시간은 흘러가고 내일은 다가온다. 미래가 보이지 않아 견디기 힘들 땐 오늘에 충실한 것이 최선임을 알기에 흘러가는 1분 1초에 의미를 부여해 본다. 내 진정성에 내일이 어서 화답하는 날이 오길 고대하며 이렇게 또 하루가 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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