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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Nov 10. 2021

잘못 들어선 길에서 헤매이다.

 지난 2주간 금요일마다 재택근무를 했더니 이젠 목요일이 주말 같다. 입사하자마자 위드 코로나가 시행되다 보니 잠깐 맛보았던 꿈같은 재택근무는 말 그대로 곧 꿈같은 일이 되겠지만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왕복 4시간의 출퇴근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너무 행복다.


 한 달이 지나자 내게도 무언가 익숙해지는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매주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주간보고와 출근하기가 무섭게 헐레벌떡 참석해야 하는 9시 회의들. 그리고 미 약속을 잡지 못해 거의 매일 혼자 구내식당에서 먹는 점심까지. 그러던 사이에 팀원 중 3명이 퇴사했다. 고작 한 달 사이에 3명이 퇴사를 하는데도 아무도 놀라거나 아쉬워하는 기색이 없다. 으레 그래 왔듯 누군가 또 새로 그 자리를 채울 거라 여기며 심드렁하고 무미건조한 인사가 오고 갈 뿐이다. 아마도 조만간 내가 익숙해지는 것들엔 작별인사도 포함될 듯하다.


 무언가에 익숙해진다는 건 그로부터 오는 힘겨움에 무뎌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치 우리의 후각이 처음의 강도로 악취를 계속 맡을 수 없게 마비가 되는 것처럼, 익숙해짐은 왕복 4시간의 출퇴근과 쉬는 날 걸려오는 상사의 전화에도 의연하게 반응할 심정적 마비상태를 허락한다. 언젠가 이 마비가 풀리면 또다시 경련을 일으킬지 도 모르지만 일단 오늘 당장 내 정신이 편안하니 괜찮아지고 있는 것이라며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빗소리가 '쏴아' 하고 철역 플랫폼에 울려 퍼진다. 겨울이 비를 앞세워 그 기세 등등한 시작을 알는 것만 같다. 플랫폼에 서서 그 용맹한 기세로 튀어 오르는 빗방울을 맞으니 정신이 바짝 난다.


'오늘 하루가 또 시작되는구나'.


 살면서 실패를 몇 번이나 겪었을까. 실패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횟수도 달라질 것이다. 내게 있어 실패는 대학입시나 구직활동을 하며 맛 본 쓴맛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 쓴맛들이 한데 모여 성취의 단 맛을 극대화시켜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그러한 종류의 실패는 삶의 희로애락을 이루는 구성 요소일 뿐이다. 그러나  인생을 살다 맞닥뜨린 선택의 순간이 나중에 후회로 돌아온다면 그건 좀 다른 이야기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그 이후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겉이 번지르르한 입구를 보고 선택했으나 입구를 지나자 바로 만난 이정표 하나 없는 진흙탕 을 계속 걸어야 할지 아니면 더 먼 길을 돌아와야 하기 전에 어서 빨리 입구로 되돌아가야 할지 이 또한 갈림길에서의 선택만큼 중요하다. 여기서 자칫 시간을 끌어 영영 입구로 돌아갈 방법을 놓쳐버리거나 진흙탕 속에 빠져 길을 잃어버리면 인생이 잠시 멈춰버린다. 이런 순간이 내겐 실패다. 극복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실패의 순간이 지금 내 목전에 있다.


 이런 일은 첫 갈림길에서 했던 나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다.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내가 잘못 판단했을 리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내 인생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그릇된 완벽주의의 폐해다. 그리고 이 오판의 피해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계속 지속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꾸역꾸역 그 진흙탕 속에 한 걸음을 내디딘 오늘. 결국 또 숨이 막혀온다. 시 돌아간다고 인생 전체가 실패로 낙인찍히는 것이 아니라고 그저 길을 잠깐 잘못 든 것이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외려 이 길을 선택하느라 포기한 다른 길이 아까워 자꾸만 그 당시의 나를 탓하느라 온 마음이 후회로 얼룩진다. 그 후회는 '이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지 않냐'며 머뭇거리고 선 나를 떠밀고 세차게 쏟아지는 빗소리마저 빨리 결정을 내리라며 나를 재촉하는 것만 같다.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당신들의 선택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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