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종일 집에 있으면 식사 시간이 참 빨리 다가온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끼 해 먹고 설거지 하느라 하루에 3-4시간은 사용하는 것 같다. 별로 하는 것도 없는데 오후에 왜 그리 입은 또 심심한지...... 오늘은 며칠을 벼르던 호떡 만들기에 나섰다. 제주에 내려오기 며칠 전부터 먹고 싶던 호떡. 예전엔 날이 추워지기가 무섭게 길가에 호떡을 구워 파는 포장마차가 나타났었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요즘엔 호떡 파는 곳을 찾기가 어렵다. 어렵게 파는 곳을 찾아도 기름에 구워 만든 호떡이 아니라 공갈빵 같은 마른 호떡을 팔아서 번번이 실망하고 돌아설 때가 많다. 그래서 결국 마트에서 파는 호떡 만들기 세트를 하나 사놓았었다.
설명서대로 이스트와 물, 반죽 가루를 섞고 한참을 손으로 치댄다. 얼마 만에 하는 요리(?)인지...... 반죽을 치대는 것에 생각보다 꽤 힘이 들어간다. 한 10분을 하니 이것도 은근히 재밌다. 양손에 기름을 묻히고 반죽에 흑설탕 가루를 넣고 동글동글 말아본다. 기름 잔뜩 두른 팬을 달궈 만들어 놓은 호떡 반죽을 넣고 노릇노릇 구워 누르개가 없으니 밥그릇으로 꾸욱 눌러 호떡 모양을 만든다. 꽤 그럴듯하다. 완성된 아이를 하나 집어 무는데 '아! 바로 이 맛이다!' 내가 먹고 싶던 까만 설탕물 뚝뚝 떨어지는 기름기 가득한 맛. 그 기름 냄새로 내 머리와 옷이 온통 물들자 벌써 20년도 더 된 옛날 생각이 난다.
갓 스물이 넘어 조그만 회사에서 알바 같은 인턴일을 했었다. 한 달에 단돈 25만 원을 받으며 일했던 그곳에서 아침마다 사무실과 음료 자판기 내부를 청소하고 부족한 커피와 차를 채우는 것이 내 주요 임무였다. 일주일에 한 번은 비린내 가득한 수조도 비워내고 청소해야 했다. 미끄덩 거리는 물고기를 잘 잡지도 못해 수조를 청소하는 날이면 온 몸이 젖기 일쑤였다. 아무리 20년 전임을 감안하고 일을 배운다는 명목이 있었음을 생각해도 너무나 박봉인 그곳에서 6개월이 넘도록 일을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매일매일 오후가 되면 먹었던 간식 때문이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떡볶이, 순대 같은 간식을 사줬다. 한 겨울엔 물론 호떡과 계란빵까지. 물론 그 간식들을 사 오는 건 당연히 내 몫이었고 오늘처럼 눈 쌓인 길을 총총 걸어가 포장마차에서 주문을 하고 기다리면 그 시간 동안 호떡 기름 냄새가 온몸에 베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냄새가 너무 싫었는데 좋고 싫음을 떠나 호떡 기름 냄새는 자동으로 내 머릿속에 그 겨울의 포장마차와 함께 스무살의 나를 송환한다. 어리고 어려 객기 가득했던 시절. 그 당시의 나는 물 밖으로 금방 나온 펄쩍펄쩍 뛰는 물고기처럼 힘이 넘쳤었다. 꿈꾸는 건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그때 그 마음이 호떡집 포장마차와 함께 몰려온다. 그 6개월은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 기간 동안 받은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처음으로 엄마에게 냉장고를 사드렸고(엄만 그 냉장고를 10년 넘게 쓰셨다.) 또 그곳에서 만난 좋은 선배의 영향으로 영국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렇게 보면 내겐 인생을 바꾼 6개월이기도 하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에 꿈꾸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닮았을까. 가끔씩 매너리즘에 빠지고 의욕이 없어질 때마다 그 겨울을 떠올린다. 월급 25만 원과 호떡 하나에 만족해야 했지만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던 스무 살의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