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와 보니 못 보던 코트가 하나 걸려있다. 엄마가 생일 선물로 사놓으신 옷이다. 생일날 제주에 혼자 있는 딸이 마음에 걸려 전화로 예쁜 옷을 사놓았다며 즐거워하시던 것이 생각났다.
오랜만에 새 옷을 걸치니 기분도 새롭다. 새 옷을 입는 건 딱 1년 만이다.
지난 1년 동안 환경 보호의 일환으로 화학 섬유로 만든 옷 안 사기 캠페인을 했다. 천연 섬유로 만든 옷은 비싸서 살 엄두가 나지 않았으니 자동으로 아무것도 사지 못 했다.
참여자는 나 밖에 없었지만 나와의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화려한 색색깔의 옷 들이 가득한 강남 한복판에서 일을 하며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온통 쇼핑하라고 손 짓하는 상점들을 외면하는 것은 예상보다 많은 인내를 요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무엇을 사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지 않는 것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세일을 하는 옷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지금 무언가를 사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마음 때문에 항상 마음속에 갈등이 생겼었다. 그리고 그런 갈등이 나에겐 스트레스였다. 그 구매 압박이라는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새 옷을 사면 며칠간 줄기차게 입다가 그 옷으로 인한 기쁨이 시들해지면 아무것도 입을 것이 없다며 또다시 옷가게를 들락 거리던 나였다. 하지만 새 옷이 입고되지 않는 내 옷장은 보물창고로 변신했다. 이전에 사놓고도 잊어버렸던 멀쩡한 옷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옷들을 이렇게 저렇게 새롭게 매칭 하며 옷 입는 즐거움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화려한 쇼핑몰을 매일 같이 지나쳐야 하는 일도 없으니 그 캠페인을 지속하기가 쉬워졌다. 집에 있게 되면 남는 게 시간이니 쇼핑에 재미를 붙이게 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이미 1년이 넘도록 생필품과 음식을 살 때 외에는 소비라는 행동과 거리를 두게 된 나는 기호품에 대한 구매 욕구가 전혀 없는 상태다.
이런 때 엄마가 준 옷 선물이 감사하면서도 이렇게 예외를 두어도 되는 건지...... 약간의 죄책감이 든다.
올해는 조금 더 욕심을 내어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를 실천해 보려고 한다. 휴직이라는 상태는 어찌 보면 나의 생활을 스스로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생각이 든다. 누굴 만날지, 어디를 갈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두 나에게 달려 있으니 실천할 수 있을 때 사지 않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내가 가진 것들 중 필요 없는 것들을 덜어내는 연습을 하고 싶다.
그렇게 덜어내다 보면 복잡하게 얽혀있는 내 머릿속 생각들도 같이 좀 덜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