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때 가장 힘든 줄 알았어요...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요 며칠 지속된 불안함에 항복한 나는, 결국 일요일 새벽부터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시험을 하나 보고 왔다. 이런 거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난 어딘가 고장 나 있는 게 분명하다.
오랜만에 새벽 공기 마시며 밖에 나오니 출근하던 때가 떠오른다. 익숙한 올림픽 도로와 도로 옆 풍경. 미세먼지에 안개까지 겹쳐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5년을 지나다닌 곳이니 그 익숙함에 마음이 편안하다.
너무 서두른 탓에 1시간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전날 비가 와 축축해진 날씨에 찬 바람까지 부니 그 추위가 살을 에인다. 추운 일요일 아침에 시간을 보낼 곳은 근처 카페밖에 없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카페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이 시험 보러 온 사람들 같다.
얼마 만에 보는 OMR 카드인지. 집에 컴퓨터용 사인펜이 없어 마트에 가서 '수험생 파이팅!'이라고 쓰인 수성 사인펜을 하나 사 왔다. 이 나이에 수험생이라는 글씨를 보니 쑥스럽기 그지없다. 시험장엔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다들 무슨 사연들이 있을까. 대학생, 취업준비생, 아니면 나처럼 머리가 굳지 않았음을 증명하려고 온 사람도 있을까. 그들 틈에 섞여 시험을 보려니 왠지 뒤통수가 따갑다.
얼마 전 티브이에서 전 이스타항공 승무원이 한 얘기가 떠오른다.
"일할 때 가장 힘든 줄 알았어요......"
그녀처럼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청년들이 얼마나 많을까. 구직을 포기하고 계속 쉬고 있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29만 명이 쉬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난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10여 년 전 이렇다 할 자격증 하나 없이 영어 하나로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렇게 쌓은 경력으로 이직도 했으니 말이다. 지금처럼 스펙 빵빵하고 몇 개 국어씩 하는 20대들과 경쟁했다면 나도 저 29만 명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물론 올해 들어 나도 그쪽으로 소속이 바뀌었지만.
이런 시험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탓일까. 시험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심드렁하다. 시험공부를 제대로 못해 아등바등 부족한 시간에 안절부절 못 하는 건 나밖에 없다. 잘 못 본다고 누가 뭐랄 것도 아닌데 짧은 시간에 집중해 최대한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시험 자체가 날 녹초로 만든다.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오지 못하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전 내내 물 한 모금 먹지 않아 목은 타는 것 같고 머리는 깨질 것 같이 아프다. 두 시간을 고개를 처박고 있으니 목은 뻐근하다 못해 부러질 것 같다. 아... 정말 항상 느끼는 거지만 무엇이든 때를 거슬러하면 몸이 그 뒷감당을 해야 한다. 며칠 동안신경을 썼더니 집에 와서 먹은 점심은 바로 체했고 결국 소화제를 한 움큼 집어 먹고 싸고 누웠다.
꼼군은 이젠 이런 내가 익숙해졌나 보다. 왜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일은 옛일,
이제는 그런가 보다 하고 잘 쉬라며 방문을 닫아준다.
무엇인가를 했다는 충만감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지금은 그마저도 못 즐길 정도로 몸이 힘들다.
나 잘하고 있는 거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