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오바니 Mar 19. 2021

행복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다.

현실적인 삶의 의미 찾기

Being happy doesn't mean that you don't have issues. It just means that you're working on them.
행복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즐겨 보던 미국 드라마에 스쳐 가듯 나온 대사가 내 귀에 꽂혔다. 렇다면 애초에 내가 불가능한 상태를 열망하던 것이었나?


 하루를 살아내며 아무 문제나 걱정이 없는 날이 오길 오매불망 기다렸다. 하나를 해결하면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이 원망스러웠고 '왜  내 인생은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애초에 행복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니...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만 같다.


 기독교에서는 삶의 의미를 예수를 따라가는 삶에서 찾는다.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인 나를 구원하신 예수를 믿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이 삶의 목표이자 의미이다. 그 천국에서 많은 상을 누리기 위해 인간으로서 예수를 닮은 삶을 사는 것 또한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던 나도 역시 이것이 내 인생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감당할 만한 시련만 주신다 생각하며 그 믿음으로 힘든 일을 이겨내 왔다.


 하지만 머리가 크고 기독교를 종교의 하나로 바라보게 되며 절대적인 믿음은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리고 종교를 떠나 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건지 다시금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떤 삶을 꿈꾸며 사는 걸까.

 통, 사람들은 행복과 부자가 되는 것을 함께 떠올린다. 하지만 무조건 돈이 많다고 행복 지수도 무한정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건 굳이 계효용 체감의 법칙과 같은 경제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밥을 먹다 보면 배가 불러옴과 동시에 처음 느꼈던 만족감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난 돈이 무한정 많기를 원하지도 않다. 그렇게 될 가망성도 없으니. 다만 나의 불안정한 심리를 건드리는 일이 아무것도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아무 문제도,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때, 그때 난 행복을 느다.

 강준만 작가는 [평온의 기술]에서 '평온은 걱정이나 두려움, 불안감이 없는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상태'라고 했다. 그렇기에 나에겐 평온이 행복과 동의어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평온의 상태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고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하는 모든 행위들에는 평온이 깨질 수 있는 나름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운전을 해서 일터에 가고 돈을 벌기 위해 투자를 하고 집을 보수하고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것과 같은 모든 일들은 삶에서 필수적인 일들이다. 사고가 날 수도 있고 투자가 실패할 수도 있고 집 보수를 맡긴 업체에서 덤터기를 쓸 수도 있고 아이 학원이 영 마음에 안 들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냥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상 항상 평온을 유지하며 살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내가 계속 평온을 행복과 동의어로 생각한다면 난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꿔야 하진 않을까. 첫머리에서 인용한 글처럼 애초에 오래 유지될 수 없는 상태를 행복으로 가정하지 말고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일들을 해결해 나가며 그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 그것이 행복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게 행복의 순간이 지금보다는 더 가까워질지도 모르겠다.


 물론 행복이라는 것,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 이렇게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 답이 얻어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래도 조금은 확률적으로 높은 방향으로 내 마음을 돌려놓는 건 의미가 있어 보인다.






 


 

작가의 이전글 우연한 만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