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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Apr 15. 2021

동네 오일장에서 떠올린 기억

값진 경험을 많이 하는 아이가 되길.

 매월 3일과 8일은 우리 동네에 장이 선다. 사실 제주까지 가서 민속오일장을 찾지 않아도 경기도 변두리에 사는 나는 5일장이 코앞이다. 이 동네에 산 지 10년이 다 되도록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맹점이긴 한데... 이것도 휴직이 가져다준 여유인 건가?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사람 북적이는 장에 한번 가보고 싶어 졌다.


 장이 서는 골목 초입부터 개구리 주차를 한 차들이 주욱 늘어서 있다. 멀리서 북적이는 인파를 보니 왜 이제껏 한 번도 여기 와보겠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지 모를 만큼 설레기 시작했다.


 장이 시작되는 곳엔 각종 채소 및 과일가게가 문전성시다. 어제 대형마트에서 비싸서 구경만 하고 온 딸기, 사과, 배 등 먹음직스러운 과일들이 착한 가격표 앞에서 날 좀 데려가라며 예쁜 색들을 뽐낸다. 그 옆엔 요즘 금값이라 집에서 길러먹자는 파테크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대파와 쪽파 그리고 부쩍 가격이 오른 당근과 고구마도 있다. '어머 저건 사야 돼~' 내 사랑 고구마도 한 바구니에 겨우 3천 원! 검은 봉지가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뭔가 뿌듯한 마음이 차오른다.


 조금 더 걸어가다 보니 맛있는 냄새와 함께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이 보인다. 이 시장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등갈비를 파는 곳이다. 지나가기만 했을 뿐인데 벌써 온몸에 밴 숯불 냄새 때문에 한 접시 먹은 것 같다. 등갈비와 찰떡궁합인(?) 시장표 잔치국수를 보니 내가 왜 점심을 먹고 왔을까 개탄스러울 뿐이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따라왔던 아이도 액세서리 점포 앞에서는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다 자기 닮은 귀여운 인형을 하나 집어 들더니 영 내려놓을 줄을 모른다. 결국 그 인형을 내게 얻어낸 후 신이 난 아이는 아빠 손을 잡아 이끌며 장의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다.

 



 예전에 나도 마켓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학교를 다니며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찾다 런던의 캠든 마켓에서 액세서리를 팔았다. 그 당시 단짝이었던 태국 친구가 소개해 준 자리였다. 주말마다 태국에서 들여온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를 팔면 하루에 거금 25파운드를 받았다. 한국돈으로 4-5만 원이니 당시로선 꽤 큰돈이었다. 생전 장사라곤 해 본 적도 없던 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매대에 들르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한번 해보라며 이 액세서리 색깔이 당신 눈 색이랑 너무 잘 어울린다고 감탄하는 연기를 해야 했다. 다행히도 내가 팔찌든 목걸이든 상냥하게 채워주면 대부분의 손님들은 거의 구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동양인들에겐 익숙한 친절과 상냥함이 서양인들에겐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캠든 마켓

 쉬었어야 할 주말마저 새벽같이 나와 마켓에서 일을 한 건 물론 학비 때문이었지만 그곳에서 만난 시장 상인들과 활기찬 주말 마켓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침 일찍 새벽 공기 맡으며 나와 언 손을 호호 불며 장사 준비를 하고 주변 상인들과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던 순간들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이 곳 동네 오일장에서 자신들의 제품이 돋보일 수 있도록 쉼 없이 위치를 바꾸고 재품을 매만지는 손길들을 보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샘솟는다.

 머나먼 타국까지 와서 별의별 경험을 다 한다 생각하면서도 그땐 그냥 모든 것이 재미있었다. 장사를 해 본 것도 좋은 경험이었고 세계 각지에서 방문하는 많은 관광객들을 상대해 본 것도 돌아보면 값진 배움이었다.

 인형을 안고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이 아이는 앞으로 크면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궁금해진다.


 나처럼 사서 고생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인생을 풍요롭게 해 주는 값진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 수 있도록 옆에서 든든한 길라잡이가 되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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