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오일장에서 떠올린 기억

값진 경험을 많이 하는 아이가 되길.

by 지오바니

매월 3일과 8일은 우리 동네에 장이 선다. 사실 제주까지 가서 민속오일장을 찾지 않아도 경기도 변두리에 사는 나는 5일장이 코앞이다. 이 동네에 산 지 10년이 다 되도록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맹점이긴 한데... 이것도 휴직이 가져다준 여유인 건가?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사람 북적이는 장에 한번 가보고 싶어 졌다.


장이 서는 골목 초입부터 개구리 주차를 한 차들이 주욱 늘어서 있다. 멀리서 북적이는 인파를 보니 왜 이제껏 한 번도 여기 와보겠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지 모를 만큼 설레기 시작했다.


장이 시작되는 곳엔 각종 채소 및 과일가게가 문전성시다. 어제 대형마트에서 비싸서 구경만 하고 온 딸기, 사과, 배 등 먹음직스러운 과일들이 착한 가격표 앞에서 날 좀 데려가라며 예쁜 색들을 뽐낸다. 그 옆엔 요즘 금값이라 집에서 길러먹자는 파테크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대파와 쪽파 그리고 부쩍 가격이 오른 당근과 고구마도 있다. '어머 저건 사야 돼~' 내 사랑 고구마도 한 바구니에 겨우 3천 원! 검은 봉지가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뭔가 뿌듯한 마음이 차오른다.


조금 더 걸어가다 보니 맛있는 냄새와 함께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이 보인다. 이 시장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등갈비를 파는 곳이다. 지나가기만 했을 뿐인데 벌써 온몸에 밴 숯불 냄새 때문에 한 접시 먹은 것 같다. 등갈비와 찰떡궁합인(?) 시장표 잔치국수를 보니 내가 왜 점심을 먹고 왔을까 개탄스러울 뿐이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따라왔던 아이도 액세서리 점포 앞에서는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다 자기 닮은 귀여운 인형을 하나 집어 들더니 영 내려놓을 줄을 모른다. 결국 그 인형을 내게 얻어낸 후 신이 난 아이는 아빠 손을 잡아 이끌며 장의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다.



예전에 나도 마켓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학교를 다니며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찾다 런던의 캠든 마켓에서 액세서리를 팔았다. 그 당시 단짝이었던 태국 친구가 소개해 준 자리였다. 주말마다 태국에서 들여온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를 팔면 하루에 거금 25파운드를 받았다. 한국돈으로 4-5만 원이니 당시로선 꽤 큰돈이었다. 생전 장사라곤 해 본 적도 없던 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매대에 들르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한번 해보라며 이 액세서리 색깔이 당신 눈 색이랑 너무 잘 어울린다고 감탄하는 연기를 해야 했다. 다행히도 내가 팔찌든 목걸이든 상냥하게 채워주면 대부분의 손님들은 거의 구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동양인들에겐 익숙한 친절과 상냥함이 서양인들에겐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캠든 마켓

쉬었어야 할 주말마저 새벽같이 나와 마켓에서 일을 한 건 물론 학비 때문이었지만 그곳에서 만난 시장 상인들과 활기찬 주말 마켓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침 일찍 새벽 공기 맡으며 나와 언 손을 호호 불며 장사 준비를 하고 주변 상인들과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던 순간들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이 곳 동네 오일장에서 자신들의 제품이 돋보일 수 있도록 쉼 없이 위치를 바꾸고 재품을 매만지는 손길들을 보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샘솟는다.

머나먼 타국까지 와서 별의별 경험을 다 한다 생각하면서도 그땐 그냥 모든 것이 재미있었다. 장사를 해 본 것도 좋은 경험이었고 세계 각지에서 방문하는 많은 관광객들을 상대해 본 것도 돌아보면 값진 배움이었다.

인형을 안고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이 아이는 앞으로 크면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궁금해진다.


나처럼 사서 고생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인생을 풍요롭게 해 주는 값진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 수 있도록 옆에서 든든한 길라잡이가 되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