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오바니 Apr 16. 2021

벚꽃 비기닝

우리 꽃길만 걸어요.

 요즘 봄이 절정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가로수에 시선을 자꾸 빼앗겨 운전에 집중하기 힘들 정도다.

'흐드러지게'라는 단어가  난 참 마음에 든다. 천박하지 않으면서 충분히 화려하게 우아한 자태를 풍긴다.


 그렇게 우아하게 만개한 벚꽃을 보니 마음이 살랑살랑 봄바람을 탄다. 집에서만 두문불출하던 우리 부부도 그 봄바람에 올라타 살짝 일탈을 감행다. 그래 봤자 저녁을 먹고 꽃구경하러 북한강변을 한 바퀴 돌고 오는 거지만 루틴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을 새롭게 한다.

북한강변 벚꽃 드라이브

 항상 함께 출퇴근을 했던 우리는 1시간이 넘는 통근거리 덕분에 차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다. 출근할 때는 함께 즐겨 듣는 라디오 채널에서 나오는 소재들로 이야기 꽃을 피우고, 퇴근 시간에는 그 날 하루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속속들이 얘기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내가 말하는 쪽이고 꼼군은 말없이 들어주다가 필요한 말만 하는 편인데 난 아무래도 좋았다. 그에겐 아무것도 숨길 것도 포장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기에 속마음 저 끝까지 드러내어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힐링이었다.

 렇게 이야기를 많이 한 덕에 나는 강산이 한번 변할 시간 동안 그와의 사이에 큰 틈을 못 느끼며 살았다. 것이 우리 부부에게 있어 애정을 유지하는 큰 버팀목 같은 거였다.  


 그런 이유에서 일까. 의 휴직과 그의 재택근무로 한 시간이 넘도록 도로 위를 오가출퇴근 길이 없어지니 그 대화의 시간이 그리워다. 별도로 둘 만의 시간을 만들지 않아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그  소중함을 이렇게 깨닫는다.


 집에서 얼굴을 항상 맞대고 있지만 대부분 가족들 전부와 함께하는 시간이기에 둘 만의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엔 역부족이다. 그것이 오늘 같은 둘만의 저녁 드라이브가 유난히 반갑고 설레는 이유다.

어둑해지는 하늘 아래 불그스름하게 켜진 조명 빛을 받아 더 환하게  만개한 벚꽃 밑에서 사진도 찍고 산책도 하며 그동안 켜켜이 쌓아놓았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이제 하루 종일 집에 함께 있으니 사실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인데 매일 조금씩 커 가는 아이를 보며 느끼는 새로운 감동을 공유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둘만 있어도 마음은 아이와 함께인 10년 차 부부가 되었다.


 이렇게 또 한 번, 두 번, 강산이 변할 동안 지금처럼 함께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길, 그렇게 봄이 몇십 번 올 동안 매번 웃으며 벚꽃 아래에서 셀카를 찍을 수 있길, 계속해서 오늘처럼 평온한 삶을 살 수 있길 바라게 다.


 드라이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앞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갈 인생을 축복하듯 하늘에서 벚꽃비가 내린다.


꽃길만 걷자. 우리. 오늘처럼.


 


작가의 이전글 동네 오일장에서 떠올린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