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오바니 Apr 21. 2021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때 평화로운 하루가 만들어진다.

작은 일이 차곡차곡 쌓여 큰 사람을 만든다.

 아침마다 차로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며 학교 앞에서 교통 봉사해주시는 어르신을 만난다. 멋지게 선글라스를 끼시고 노란 조끼를 입으신 채 학교 정문 앞에 서서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져주시는 분이다. 등교하는 아이들에겐 일일이 손을 흔들어 반갑게 인사해 주시고 차를 타고 있는 부모들에게는 경례를 하듯 오른손을 들어 까딱 인사를 하신다. 그분께 최대한 머리 숙여 답례를 보내며 이 평화로운 순간에 어울리지 않는 비장함 같은 것을 느꼈다.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이 무사히 등교할 수 있도록 각자 맡은 자리에서 자신의 임무를 해내고 있다는 기분이랄까. 그분은 현장에서 교통지도를 하시고 나는 최대한으로 자동차의 속도를 낮춰 살얼음판을 지나듯 학교 앞 건널목을 걸어가는 아이들이 안전히 길을 건널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이렇게 우리 어른들이 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마음을 모으는 기분이 묘한 동질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무심코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일 같지만 각자 맡은 일 최선을 다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감이 모여 평화로운 하루를 만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훈훈해진다.


 이렇게 보면 세상에 하찮은 일, 쓸데없는 일은 없다. 그리고 오랜 시간 일을 해 보니 작은 일을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했던 사람이 큰 일도 잘해 낸다는 걸 알게 되었다.




 10여 년 전 처음 신입사원이 되어 맡은 일이 세계 환경올림픽을 유치하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스케일이 너무 큰 일을 덜컥 맡게 되니 겁이 났다. 무슨 일인지 감조차 잡지 못 했을 때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 상태에서도 2주 동안 스페인 출장을 가야 했고, 음악을 전공한 탓에 대중 앞에서 공연은 해 봤어도 프레젠테이션은 한번 해 본 적이 없던 내가 그 대형 행사를 준비하며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번쩍이는 중심에 서서 국제본부의 답사를 진행해야만 했다. 그 사진이 경제 신문 메인에 올라 엄청 신기해했던 기억도 있다. 그렇게 큰 일을 맡아 진행하며 이리저리 부딪히고 깨지고 힘들었지만 그 행사가 끝난 4년 후엔 몰라볼 만큼 부쩍 성장한 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성장은 규모가 큰 행사를 완료했다고 따라온 성취는 아니었다. 그 행사를 맡아 진행하는 기간 내내 그 행사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기에 열명, 스무 명짜리 포럼이나 세미나와 같은 작은 행사도 함께 맡아 운영해야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행사는 크나 작으나 같은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렇기에 들이는 시간에만 차이가 있을 뿐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행사를 주최하는 사람 입장에선 열명짜리든 1만 명짜리든 내 행사가 최고다. 결코 작다고 소홀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 고객이 무엇이 필요하다 말하기 전에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했다. 물론 항상 잘할 수는 없었고 의도치 않은 실수로 실망을 준 고객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진심을 다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고객이 만족한 작은 행사를 치르면 그 고객은 다음에 더 큰 행사를 가지고 내게 찾아왔다.


 그때 얻은 깨달음으로 작든 크든 무슨 일이든 주어지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작은 일을 잘 해내면, 큰 일도 잘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맡겨진 일의 경중을 따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성의 있게 해 내면 그 작은 성의가 차곡차곡 쌓여 내 커리어를 만들었다.


 오늘, 매일 아침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를 충실히 해 내시는 교통봉사 어르신을 보며 나도 지금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본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학생으로서 눈 앞에 주어진 일에 충실해야 비로소 그다음에 올 일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것을 되뇌게 되는 아침이다.

작가의 이전글 벚꽃 비기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