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돈을 전부 털어 제주에 집을 짓고 나니 서울 한복판에 있는 회사 근처에 집을 얻을 만한 돈이 남아 있지 않았다. (사실 그 돈이 있었다 하더라도 회사 근처는 언감생심이긴 하다.) 결국 경기도에서도 가장 변두리로 밀려난 우리 부부는 매일 장거리 여행을 하듯 회사를 다녔다. 그나마 부모님이 계신 곳이라 육아에 도움을 받을 수 있어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아침저녁으로 길 위에서 고군분투를 했다. 다행히 주차 지원이 되는 회사를 다닌 덕에 차를 가지고 다닐 수 있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이 생활에 익숙해졌다. 아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4개월쯤 쉬고 나니 그동안 얼마나 무리를 하며 다녔던 건지 비로소 깨달아진다. 1년에 3만 킬로씩 달리니 자동차는 5년 만에 고물이 되었고 출근에 힘을 다 빼면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기운이 났다. 퇴근 후 그렇게 같은 길을 운전해서 집에 오면 초주검이 되어 만사가 귀찮아 초점 없는 눈동자로 주린 배를 채운 뒤 책 몇 장 넘기다 보면 금세 곯아떨어졌다. 그래도 다들 이렇게 산다고, 나만, 우리만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거 아니라고 위로하며 하루를 살아내길 몇 년째. 되돌아보니 내 몸에 참 못할 짓 하며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힘든 일상을 보상받기 위해 그렇게 제주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출근해야 할 꼼군과 1년 뒤 복직할 나의 출근길을 생각하니 더 이상은 이 곳에 머무를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얼마 되지 않는 자금을 가지고 부동산 앱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조금이라도 회사 가까운 곳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찾는 중이다. 몇 개월 전 전세 대란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전셋값이 살짝 안정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지만 그래도 우리가 가진 돈으론 회사 근처는 커녕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이내 지역에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저 출근 시간을 10분 20분이라도 줄일 수 있는 곳을 찾아내길 바라며 열심히 핸드폰 위에서 이 동네 저 동네를 손가락으로 들쑤시고 다닌다.
이전에 일을 하다 만난 독일 사람과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비즈니스차 한국을 방문했던 그 젊은 유럽인은 한국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 한국사람들의 일상, 직업, 문화 등 여러 가지를 묻다가 출퇴근 시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는 내가 아침마다 1시간 반이 걸려 출근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정말 깜짝 놀라며 자신이 사는 곳에서는 30분만 걸려도 멀어서 못 다닌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자신은 도저히 못할 거라고 했다. 물론 서울이 유럽의 도시들에 비하면 좀 큰 도시이긴 하다. 하지만 물리적인 크기를 감안하더라도 유난히도 높은 회사와 각종 기관들의 서울 집중도, 그리고 그 때문에 모두들 서울에 살겠다며 발버둥 치는 정도의 크기는 유럽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나마 잘 발달된 지하철과 버스 그리고 유럽에 비해 저렴한 교통비 덕에 다들 나처럼 아침저녁으로 전쟁을 치르면서도 꾸역꾸역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휴직을 통해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본 출퇴근 전쟁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상은 아니다.
이제 아이도 할머니 손이 없어도 자기 앞가림은 할 정도로 컸고 우리는 삶의 질을 조금 높여보기 위한 꿈틀거림을 시작하기로 했다. 부동산 앱에 나오는 그 수백수천 개의 집 들 중 과연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집이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간절히 바라면 어떻게든 방법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