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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Apr 26. 2021

전세대란에 나도 탑승해 보련다.

삶의 질을 높이려는 몸부림

 처음으로 부동산 앱을 하나 다운로드 했다.


 가진 돈을 전부 털어 제주에 집을 짓고 나니 서울 한복판에 있는 회사 근처에 집을 얻을 만한 돈이 남아 있지 않았다. (사실 그 돈이 있었다 하더라도 회사 근처는 언감생심이긴 하다.) 결국 경기도에서도 가장 변두리로 밀려난 우리 부부는 매일 장거리 여행을 하듯 회사를 다녔다. 그나마 부모님이 계신 곳이라 육아에 도움을 받을 수 있어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아침저녁으로 길 위에서 고군분투를 했다. 다행히 주차 지원이 되는 회사를 다닌 덕에 차를 가지고 다닐 수 있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이 생활에 익숙해졌다. 아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4개월쯤 쉬고 나니 그동안 얼마나 무리를 하며 다녔던 건지 비로소 깨달아진다. 1년에 3만 킬로씩 달리니 자동차는 5년 만에 고물이 되었고 출에 힘을 다 빼면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기운이 났다. 퇴근 후 그렇게 같은 길을 운전해서 집에 오면 초주검이 되어 만사가 귀찮아 초점 없는 눈동자로 주린 배를 채운 뒤 책 몇 장 넘기다 보면 금세 곯아떨어졌다. 그래도 다들 이렇게 산다고, 나만, 우리만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거 아니라고 위로하며 하루를 살아내길 몇 년째. 되돌아보니 내 몸에 참 못할 짓 하며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힘든 일상을 보상받기 위해 그렇게 제주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출근해야 할 꼼군과 1년 뒤 복직할 나의 출근길을 생각하니 더 이상은 이 곳에 머무를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얼마 되지 않는 자금을 가지고 부동산 앱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조금이라도 회사 가까운 곳에 갈 수 있 방법을 열심히 찾는 중이다. 몇 개월 전 전세 대란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전셋값이 살짝 안정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지만 그래도 우리가 가진 돈으론 회사 근처는 커녕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이내 지역에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저 출근 시간을 10분 20분이라도 줄일 수 있는 곳을 찾아내길 바라며 열심히 핸드폰 위에서 이 동네 저 동네를 손가락으로 들쑤시고 다닌다.


 이전에 일을 하다 만난 독일 사람과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비즈니스차 한국을 방문했던 그 젊은 유럽인은 한국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 한국사람들의 일상, 직업, 문화 등 여러 가지를 묻다가 출퇴근 시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는 내가 아침마다 1시간 반이 걸려 출근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정말 깜짝 놀라며 자신이 사는 곳에서는 30분만 걸려도 멀어서 못 다닌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자신은 도저히 못할 거라고 했다. 물론 서울이 유럽의 도시들에 비하면 좀 큰 도시이긴 하다. 하지만 물리적인 크기를 감안하더라도 유난히도 높은 회사와 각종 기관들의 서울 집중도, 그리고 그 때문에 모두들 서울에 살겠다며 발버둥 치는 정도의 크기는 유럽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나마 잘 발달된 지하철과 버스 그리고 유럽에 비해 저렴한 교통비 덕에 다들 나처럼 아침저녁으로 전쟁을 치르면서도 꾸역꾸역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휴직을 통해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본 출퇴근 전쟁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상은 아다.


 이제 아이도 할머니 손이 없어도 자기 앞가림은 할 정도로 컸고 우리는 삶의 질을 조금 높여보기 위한 꿈틀거림을 시작하기로 했다. 부동산 앱에 나오는 그 수백수천 개의 집 들 중 과연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집이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간절히 바라면 어떻게든 방법이 있지 않을까?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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