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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Apr 27. 2021

가끔씩 우리의 극성이 날 힘들게 한다.

답답병이 도졌다.

 오랜만에 시원하게 비님이 내리시니 신이 난다. 휴직 전에는 항상 오늘처럼 비가 오는 월요일이면 제일 먼저 아수라장이 되어 있을 출근길이 떠올랐는데 제주집에 나무를 심고 온 날부터는 우리예쁜 나무들이 시원하게 물을 마실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마냥 기분이 좋다. 게다가 나도 온몸에 습기를 머금은 채로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창 안에서 바라보는 빗물은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오늘은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은 내려놓고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물이 창에 맞아 주룩주룩 떨어지는 모습을 감상하며 어둡고 불안한 마음은 그 빗물과 함께 땅 밑으로 씻어내려 내는 중이다.


 어제는 한 동안 잠잠했던 답답병이 도졌다. 내가 명명한 '답답병'은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을 즈음 처음 느꼈던 심리상태를 의미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관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되었던 영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오니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각 종 이슈에 너무 민감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다들 너무 관심이 많다. 첫 만남에 다짜고짜 몇 살이냐부터 물어오는 것도 당황스러웠고 호구조사부터 시작해서 무슨 일을 하며 남자 친구는 있는지 없는지 어디에 사는지 개인적인 것들을 꼬치꼬치 캐묻는 것에 적응하는 것도 꽤 시간이 걸렸다. 영국에서보다 한국에서 산 시간이 훨씬 길지만 나의 성향과는 잘 맞지 않는 문화였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정치, 경제, 사회 이슈에 있어서도 물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왠지 다들 그냥 관심의 정도를 넘어서서 많이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어디서든 사람들과 얘기를 시작하면 누군가는 언성을 높여 다른 생각을 가진 이를 비난했고 결국은 씁쓸하게 자리를 파하기도 여러 번. 그때부터는 나의 관심사와 사회 이슈에 대한 성향을 아주 친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도 한 동안은 사람들의 이런 열의와 관심, 서로에 대한 경쟁심이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는 긍정적인 자극이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일정 부분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냄비근성이라며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난 일명 우리나라 사람들의 '극성'이 요즘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우리 민족의 높은 경쟁력에 일조한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씩 자신의 이익을 향한 맹목적인 극성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부당한 일을 겪거나 혹은 지나친 욕심으로 상식이 깨지는 일을 목도하게 되면 그 돈에 대한 집착과 극성, 남을 밟고서라도 어떻게든 자기 배만 불리겠다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행태에 넌덜머리가 난다. 그리고 다시 '답답병'이 도진다.


 예전에는 이렇게 숨이 막힐 듯 답답병이 도지면 다른 나라로 그냥 떠나 버리고 싶었다. 너무 극성맞게 살지 않아도 내가 버는 만큼만 당당하게 쓰며 먹고살면 되고 겨울에 민소매 옷을 입든 여름에 겨울 점퍼를 입든 혹은 차 범퍼가 박살 나서 테이프로 얼기설기 붙이거나 백미러가 없어서 오토바이 백미러를 붙이고 다녀도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는 그 곳으로 다시 가고 싶었다. 적어도 그런 것들로 날 판단하지 않는 척이라도 하는 그곳이 그리웠다.


 하지만 지금은 내 나라가 제일이라는 것을 안다. 같은 언어를 말하고 같은 문화를 향유하고 같은 시대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 편하고 행복한 일인지 안다. 그래서 이제 그런 마음은 품지 않는다. 적어도 도망치며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는 않기에 이렇게 답답병이 찾아오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내려 노력 중이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빗물에 그 답답함을 쓸려 내려 보내고 빗소리를 들으며 차분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한다. 좋아하는 차를 마시고 글을 쓰며 그 답답한 마음을 잊으려 노력하고 또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맛난 것을 먹고 즐거운 순간들을 기억해내며 긍정의 마음이 부정을 덮을 수 있을 만큼 크게 키워본다.


 그렇게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어 내는 것이 아닌 잘 살아내고 있다는 걸 상기하다 보면 어느새 답답한 마음이 사라진 걸 발견하게 된다. 얼마 전 읽은 「부의 원천」에서 뇌는 노력 여하에 따라 긍정적인 삶을 이끄는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도 아니면 반대로 부정적인 삶으로 나를 던져 넣을 최고의 악당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는 전적으로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긍정적인 삶의 방향과 이루고 싶은 목표를 시각적으로 인식시키면 뇌는 이것이 현실인지 공상인지 구분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뇌가 인식한 원하는 삶의 목표를 현실로 착각한 뇌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한다는 얘기다. 거짓말 같은 얘기지만 이 책을 쓴 신경과학자인 타라 스와트 교수가 과학적으로 증명한 얘기니 나로서는 안 믿을 재간이 없다.


그래서 나도 노력 해 보기로 했다. 나의 마음과 나의 뇌가 긍정의 방향으로 세팅될 수 있도록. 그래서 더 이상은 이런 답답병이 날 찾아와 괴롭히지 못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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