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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Apr 30. 2021

평범한 일상을 만드는 특별한 곳

우리동네를 소개합니다.

 우리 동네는 행정구역상 가장 작은 구역을 뜻하는 '리'에 소재해 있다. 어디 가서 주소를 적을 일이 있을 때마다 00읍 00리라고 적으면 괜스레 목덜미가 뜨끈해졌다. 온통 아파트 천지인 이 동네를 시골이라 하기엔 좀 억지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맘때마다 그 아파트들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밭들을 가느라 트랙터들이 분주히 오가고 하천 가까이 자리 잡은 구옥들의 담장 안에선 닭들이 활개 치며 '꼬꼬댁 꼬꼬 꼬꼬!' 영락없는 전원마을이다.


 이 곳에서 10년을 살았어도 매일 서울로 출퇴근하느라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본 적이 없었는데 휴직 중인 지금은 이곳저곳 다니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젠 제법 동네 사람이 다 돼서 지난번에 한번 가 본 오일장이 서는 날짜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고 우리 집에서 읍내로 빨리 걸어갈 수 있는 샛길도 익혔다.

 그뿐만 아니라 희한하게도 내가 사는 아파트엔 1년에 한 번씩 커다란 장이 선다. 말 그대로 아파트 단지 내에 지상 주차된 차를 모두 몰아내고 그곳에 장이 들어선다. 1층 공동현관 앞을 나서자마자 즐비하게 들어선 노점에는 각종 과일과 주전부리,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빨간 붕어를 파는 곳과 어른들의 발걸음도 멈추게 하는 사격으로 인형 뽑는 곳까지... 처음 이사 와서는 너무 생경한 풍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녁이 되자 아파트 중앙 광장에서는 널따랗게 펼쳐놓은 포장마차에서 통돼지 바비큐가 매캐한 연기를 뿜어냈고 주변 아파트 주민들까지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막걸리와 함께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 난 그 상황이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서 집 베란다에 나와 마구 사진을 찍어댔었다. '이런 게 동네잔치인가' 궁금해하며.


 그뿐만이 아니다. 매일 아파트 중앙에 포장마차가 들어선다. 월요일은 과일, 화요일은 선짓국과 추어탕, 수요일은 떡볶이와 호떡, 목요일은 뻥튀기, 금요일은 곰장어다. (이걸 내가 다 외우고 있다니 쓰면서 나도 놀랐다.) 매주 같은 장사들이 오니 이제 제법 단골이 된 집도 있다. 수요일날 오는 떡볶이 포장마차는 우리 가족이 아주 좋아하는 맛집이다. 다른 곳과 견주어봐도 맛이며 양이며 가성비며 절대 뒤지지 않는다. 심지어 관리사무소에서는 매일 이들을 방송으로 광고도 해 준다. "아파트 중앙에 어른들과 어린이 모두 좋아하는 뻥튀기를 팔고 있사오니 모두 나오셔서 이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상 포장마차에서 알려드렸습니다!"


 이 곳으로 이사 오기 전 살던 아파트는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우리 같은 외지인이 많이 살던 곳이었다. 앞집에 누가 사는지 아랫집에 누가 사는지 별로 관심도 없고 이 지역 모국회 의원도 산다던 그런 도시 냄새나는 아파트였다. 그런데 바로 길 하나 건너 이사 온 이 곳은 이 지역 토박이들이 많이 사는 곳이어서일까? 완전 딴 세상이다. 경비아저씨들도 동네 주민들과 훨씬 스스럼없이 지내시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동네 주민들은 서로 가볍게라도 인사를 나눈다. 처음엔 티브이에서나 나올 법한 시골 아파트의 온정이 부담스러웠는데 3년 차에 접어드니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우리 아이에게 이쁘다며 말을 거시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이 동네 어르신들의 따스함에 나도 어느덧 정이 들었다.


 사람이 산다는 건 그냥 이런 게 아닐까. 평범한 하루를 조금은 즐겁게 해 주는 맛난 군것질 거리와 덕담을 나눌 수 있는 이웃들과의 왕래. 그런 따스한 일상이 쌓여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간다는 생각이 든다.

 이 동네는 어느덧 내게 그런 평범한 일상을 들어주는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이곳을 떠나려고 계획 중이어서일까... 어쩌면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 동네의 온정이 계속 나를 뒤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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