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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Apr 14. 2021

아빠와 단 둘이

아빠도 나처럼 서툴렀던 거였다.

 한 달 만에 또다시 지연된 서울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제주 공항에서 대기 중이다. 다만 이번엔 우리 아빠와 함께다. 이 나이쯤 되면 아버지라 불러야 적절한 단어 사용일 것 같은데 난 여전히 아빠라는 친근한 이 단어가 더 좋다.


 애초부터 계획된 여행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아빠와 단 둘이 제주를 다녀게 되었다. 짧은 일정에 나무 심으랴 집 손 보랴 육체적으로 힘들 것이 뻔한데도 혼자 고생할 딸 때문일까. 아빠는 두말없이 함께 가겠다고 하셨다.


 아빠와 함께 맛집을 찾아다니며 삼시 세 끼를 먹고, 집 정원에 나무를 심고, 잠깐 짬이 나면 풍경 좋은 내 단골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며 이틀을 보냈다. 생각해보니 이 나이가 되도록 아빠와 이런 시간을 보낸 건 처음이다.


 어릴 땐 엄한 아버지가 마냥 무서웠고, 머리가 크면서는 무뚝뚝한 아버지에게 먼저 말 붙일 정도의 애교도 없어 도통 대화다운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다. 이틀 동안 지난 몇십 년 동안 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아빠 젊은 시절 있었던 소싯적 에피소드와 수없이 들었던 엄마와 아빠의 첫 만남 이야기 (미니스커트를 입고 친구들과 명동거리를 활보하던 엄마에게 아빠가 커피 한 잔 하자고 했다는데 난 아무리 애를 써도 두 분의 모습이 좀처럼 머릿속에 그려지질 않는다. 이렇게 무뚝뚝한 분이 헌팅을 했다고?), 앞으로 노후를 어떻게 보내고 싶으신지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랜  이어진 대화의 공백을 조금은 메 수 있었다.


 아빠와 이야기를 하며 내가 아빠를 참 많이 닮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키 크고 호리호리한 체형부터 얼굴 생김 그리고 성격까지. 알고 보니 난 아빠 판박이다. 생각이 많고 남에겐 관대하지만 나에겐 혹독한 성격도 닮았고 책을 좋아하는 것도 아빠에게서 왔다. 심지어 걸음이 빠른 것도 똑같다. 180 센티미터가 넘는 키로 성큼성큼 걸으시면 키가 큰 나로서도 따라잡기가 힘들다. 한참을 앞서 걷다가 뒤를 돌아보며 빨리 오라고 손짓하시는 걸 보며 우리 아이가 떠올랐다. 항상 앞서서 걷는 엄마를 따라잡겠다며 뛰어와 내 손을 잡던 아이가 오늘은 바로 나다.


 그렇게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아빠와 팔짱 끼고 걷고 사진도 찍으며 언제 다시 올 지 모를 소중한 시간의 기억을 남다. 아빠와 좋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평소에 아빠에게 데면데면하게 굴었던 것이 미안해졌다. 그 의도된 데면데면함과 서먹함은 어릴 적 사업으로 바빴던 아빠가 딸과 그 정도 관계밖에 맺지 못한 건 내 책임이 아니라는 무언의 시위였다.

 하지만 이번에 아빠와 시간을 보내며 아빠에게서 일하는 엄마로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 일에 치여 아이와 데면데면해진 시간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어떻게 할 줄 몰라 어설픈 엄마 역할을 계속하고 있는 나.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고 사랑의 크기도 작은 건 닌데 나는 어릴 적 아빠의 부재와 사랑의 부족을 동일시했었다. 빠도 지금의 나처럼 일하느라 바빴고 부모로서 서툴렀을 뿐 마음의 크기가 작았던 건 아니었을 텐데... 다시금 그동안의 서먹함이 죄송해졌다.


 엄마가 된 나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 아빠는 계속해서 내 옆에 머물며 날 주시하면서 내 필요를 채워주시고 힘든 일을 대신해 주시려 하는 다정한 분이다. 말을 따뜻하게는 못 해도 자식 향한 마음은 다른 부모들과 다를 바 없는 부성애 가득한 그 모습이 내 아이를 향한 내 마음과 꼭 닮아있었다.


내 아이도  나이가 되면  마음을 알아줄까? 이제 어느덧 부모님의 모습을 통해 나를 비추어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부모님 계실 때 잘하라는 말이 오늘은 좀 다르게 느껴진다. 하지만 오늘은 더 늦기 전에 후회할 일을 하나 줄였다는 의미에서 내게 잘했다며 칭찬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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