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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Apr 05. 2021

가지 마 친구야!

완벽한 나 만의 공간을선사해준 내 생애 첫 새 차

 어릴 때부터 차를 좋아했다. 계기가 뭐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창 차가 좋았을 때는 매일 밤 꿈에 운전하는 내가 나왔다. 어린아이였으니 커다란 자동차가 아니라 범퍼카 같이 페달을 밟으면 앞으로 나가는 어린이용 자동차를 타고 커다란 대로변에 나가 쌩쌩 요리조리 큰 차들을 피하며 운전하는 꿈을 꿨다. 항상 가로등 불빛이 훤한 밤 도로에서 신나게 운전하는 꿈을 꾸다 보면 정말 현실인 양 속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스무 살이 되자마자 운전면허를 땄다. 나의 첫 차는 외삼촌이 물려주신 유로 엑센트였다. 수동 기어던 그 차를 타려고 2종 오토였던 면허를 1종으로 바꾸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차를 받자마자 친구들을 태우고 춘천까지 내달렸다. 우회전을 너무 크게 돌아 마주 오던 버스와 부딪힐 뻔하기도 하고 고바위 언덕에서 시동을 계속 꺼뜨려서 뒷 차들에게 엄청 욕도 먹었다. 하지만 그렇게 목숨 내놓고 춘천을 다녀오자 운전이 바로 익숙해졌다. 여러 날이 걸릴 연습을 춘천 한 방에 해결한 것이다. 물론 춘천 다녀오고 며칠을 끙끙 앓았다. 오른쪽 다리와 엉덩이에 감각이 없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핸들을 꽉 쥐는 바람에 팔도 쿡쿡 쑤셨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생각해 보면 난 참 차 복이 많았다. 인복이라고 해야 맞나? 영국에서도 거짓말처럼 차가 필요할 때마다 차가 생겼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공짜로... 물론 첫 번째 차는 공짜로 줘도 안 가져갈 것 같은 골동품에 오른쪽 백미러도 없던 차였고 두 번째 차는 내게 영어 과외를 받던 학생이 그 과외 값 대신 한국으로 가면서 주고 간 것이니 딱히 횡재라고 까지 할 건 없다. 하지만 그 골동품 같은 차에 맞는 백미러가 없어 대신 작은 오토바이 백미러를 달고 부서진 앞 범퍼는 테이프 붙인 채 열심히 학교와 알바를 오갔고 졸업 후 공항에서 일하던 내게 차는 정말 필수였으니 두 번째 차도 정말 고맙게 잘 썼다.


 그렇게 중고차들과 안녕을 하고 한국에 돌아온 난 스스로에게 취업 턱을 거하게 쏘기로 했다. 새 차를 산 것이다! 내 인생에 새 차 라니... 그 당시 티브이에서 광고하던 한 차를 눈여겨보다 망설임 없이 지르기로 했다. '넌 이만한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어! 그래 그동안 고생했다'며 자축하는 기분이었다.

 그때 그 차를 사지 말고 회사 근처에 100평짜리 작 땅을 사라 하던 오라버니가 계셨는데 난 정말 두 번 생각도 안 하고 코웃음을 쳤다. "에이~ 제가 제주도에 땅 살 일이 뭐가 있어요!" 그 당시 평당 10만 원 하던 그 땅이 지금 3~4백이 넘으니 난 정말로 비싼 차를 샀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진짜? 아마도...)


 지난 13년 동안 이 차는 내 모든 희로애락을 함께다. 꼼군과 처음 만나 꽁냥꽁냥 연애하던 시절도 이 차 함께였고 그와의 결혼식날엔 웨딩드레스를 입고 내가 직접 이 차를 운전해서 결혼식장에 갔다.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산 카시트를 설치한 것도 이 차였고, 이제 아이가 커 카시트는 없어졌지만, 대신 운전하는 아빠 옆에 앉겠다는 아이 때문에 뒷자리 신세가 된 나를 품어주는 것도 이 차다.


 내가 왜 차를 좋아했을까? 생각해보면 차 안은 완벽한 내 공간이기 때문인 것 같다. 항상 동생과 방을 같이 썼던 나는 내 공간이 절실했다. 사색할 공간이 필요했던 내게 운전을 한다는 건 내 공간이 생긴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으리라. 그래서 처음 이 차가 생겼을 때 꼭 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말없이 내 말 다 들어줄 친구. 태순이라고 이름도 붙여주고 매주 목욕도 시켜주며 애지중지 한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다. 마음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시원하게 뻗은 밤 도로를 달리며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고래고래 목청 놓아 노래를 부르면 위로가 되었다. 내 맘 다 아는 듯 더 힘내서 신나게 달려주는 이 친구에게 슬픔도 아픔도 다 털어놓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이 친구도 이제 나이가 드니 자꾸 아프다. 보내줘야 할 시간이 가까워져 오는 것만 같아 마음이 휑하다. 처음 구매할 당시 최첨단이던 계기판도 요즘 나오는 진짜 최첨단 계기판에 비하니 아날로그 감성 뿜뿜이다.


 그래도 난 이 친구가 달릴 수 있을 때까지, 어느 날 길을 가다 멈춰 서서 더 이상 못 가겠다고 주저앉기 전까지는 이 친구를 보내지 않을 작정이다.

  친구가 가 버리면 내 인생에서 가장 파란만장했던 챕터  닫혀버릴 것만 같은 쓸쓸한 기분이 든. 


아직은 그 챕터를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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