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가슴이 답답하면 무작정 길을 나선다. 그래 봤자 집 근처 자그마한 개천을 따라 생긴 산책길 아니면, 반대편 대로 쪽으로 나 있는 상가가 즐비한 도로 옆 길, 이렇게 두 가지 옵션밖에 없다.
오늘은 차 한 잔이 생각나 도로 옆에 얼마 전 새로 생긴 별다방에 가보려다 얼마 못 가 지레 포기했다. 오늘따라 큰 도로를 끊임없이 오가는 자동차 소리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내 신경을 긁었다. '원래 차 소리가 이렇게 컸던가?'
강남 한복판에서 일을 하며 각종 소음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던 작년과 달리 몇 달 안 되는 사이에 고요에 적응해버린 내 귀는 오늘따라 더 까탈을 부린다. 제주에서 혼자 안식월을 보내며 조용하다 못해 으스스하기까지 했던 그 침묵에 어느새 이렇게 익숙해졌던가. 요즘엔 음악도 잘 듣지 않아 식구들끼리 대화하는 것 외에는 소리에 노출될 일이 별로 없다.
어쩌면 메니에르를 앓고 있는 내 귀가 오늘 컨디션이 별로 안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몸이 조금이라도 피곤하면 '삐~'하고 엄청 높은 주파수대의 소리를 내며 내게 경고하는 이 질환은 이미 내 청력의 저주파수대를 많이 깎아먹었고 안 그래도 싱겁게 먹는 내 식단에서 소금을 더 덜어냈다.
생각해보면 사무실에 갇혀 일을 했던 그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자잘한 병들이 찾아왔었다. 머리를 가눌 수도 없게 자주 찾아온 심한 편두통과 온몸에 발진을 일으킨 알레르기, 1년이 넘도록 밀가루를 끊게 만든 원인 모를 위무기력증과 허리디스크, 열 수 있는 창문 하나도 없이 건조하고 공기 나쁜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때 되면 달고 살던 편도염과 감기. 그리고 작년에 발발한 메니에르까지...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이제껏 월급 받아 병원에 다 갖다 바쳤구나!
사실, 몸이 아파 회사를 쉬거나 그만두는 사람들을 보면 겉으론 안타까워했지만 속으론 배부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얼마나 힘들었길래 그런 선택을 해야 만 했을까. 이해가 된다. 나도 머리가 쪼개질 듯이 아파와도 휴게실 하나 없는 회사에서 갈 곳이 없어 손바닥만 한 화장실에 앉아 엎드려 있던 적이 수십 번이다. 그때마다 당장 집에 가고 싶었지만 참으면 괜찮을 거라 생각하며 우격다짐으로 버티곤 했다.
그렇게 살았으니 행복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식하게 앞만 보며 돌진하던 내 삶에 브레이크를 걸어 준 휴직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요즘엔 눈 앞에 닥친 일에 매몰되기보다 조금 더 넓고 큰 시야로 지금을 보려고 노력 중이다. 1년의 쉼이 내 인생에 큰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으려면 내가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내야 할지 매일 고심한다. 찬찬히 뒤 돌아보니 내가 살던 삶이 정답이 아니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다시 그 삶 그대로 되돌아가는 건 내가 원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에게 직책을 단 이름으로 불리고 회사에서 주는 여러 가지 베네핏을 누리고... 그런 것들이 엄청 중요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들과 바꾼 것이 내 건강과 행복이라면 내가 너무 손해이지 않나.
다시 일을 하더라도 내 건강과 인생을 담보로 잡히고 싶진 않다. 정서적으로 충만감을 주고 인생에 목적을 부여하는 그런 일을 하며 내 몸도 내 마음도 챙겨가며 일 할 수 있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