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맞다. 얼마 전 정말로 길을 가다 새똥을 맞아보니 그 아무리 날랜 사람도 떨어지는 새똥을 막을 재간은 없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 없듯이... 지금 여기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1분 1초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가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4월도 어느덧 중순에 접어들었다. 예정된 1년의 기간 중 3분의 1이 지나가 버렸고 난 여전히 쉬는 법을 배운다는 목표와는 멀어져 하루를 안달복달하며 살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이미 지나가 버린 3분의 1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쉼을 통해 달성하려던 조금 더 나은 사람, 조금 더 편안하고 여유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향해 나만의 방법으로 나름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는 중이다.
여전히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와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의 삶은 나의 하루를 최대한 단순하게 만든다. 아침부터 책상 앞에 앉아 하루를 보내는 내게 운동을 하러 가는 시간은 그래서 특별한 이벤트다. 이제는 제법 얼굴이 익어 반갑게 맞아 주시는 나이 지긋하신 회원분들과도 가끔씩 잡담을 할 만큼 친근해졌고 이제껏 어딜 가나 꼰대 대접을 받았던 내 나이에 다시 그분들의 막내딸쯤으로 여겨지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가만히 살펴보면 이 열명 남짓한 사람들 속에도 나름의 질서와 위계가 있다. 첫 번째로 그 질서를 만드는 기준은 역시 나이다. 내가 보기엔 다 똑같은 어르신이지만 그분들에게도 나이차로 인한 위계와 질서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분들끼리 '언니'하며 친근하게 부르고 서로 챙겨주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난다. 두 번째는 성격이다. 내가 클래스에 들어설 때마다 "어서 와요~"라고 큰 소리로 인사해 주시는 푸근한 인상의 큰 언니 같은 분이 계시는가 하면 항상 곱게 화장을 하고 오셔서 선생님에게 어려운 포즈는 하지 말라며 앙탈을 부리는 소녀 같은 분도 계신다. 개 중에 나이가 가장 어려 보이는 한 분은 항상 요가 시작 전 걸레 밀대를 들고 바닥 청소를 하신다. 그걸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제가 하겠다'며 걸레를 가져가려 하면 아니라고 괜찮다며 한사코 도움을 뿌리치실 때마다 '젊은이'로서 그걸 보고 서 있기가 민망하다. 또 어떤 분은 항상 선생님 매트까지 대신 깔아놓고 소독약을 뿌려 깨끗하게 준비해놓으셔서 대부분 요가 시작 시간에 맞춰 헐레벌떡 오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게다가 오늘은 나와 가장 먼 곳에 앉으셔서 얼굴도 가물한 분이 모든 회원들에게 나눠주겠다며 색색깔의 요가 양말 수십 개를 사 들고 오셨다. 구석진 곳에 쭈뼛거리며 서 있는 내게도 한사코 와서 골라가라며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과 회색 양말을 들이미시니 나도 이제 이분들 틈에 제법 섞여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닫혀있던 내 마음에도 온기가 스며든다.
처음 운동을 시작하면서 코로나 때문에 굳이 억지로 대화를 하지 않아도, 요가 끝난 뒤 그분들과 어울리며 친분을 쌓지 않아도 되니 외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난 잠시 왔다 갈 사람이니 조용히 그저 하루에 한 시간씩 땀 흘리며 여태껏 혹사만 했던 몸에 보답하자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 마음 따뜻한 분들과 알게 모르게 쌓고 있는 시간들이 내 마음을 말랑이게 만든다.
이렇게 어르신들과 어울리다 보니 예전 교회에 다니던 때가 떠올랐다. 고등학생쯤 되었던 그때, 교회에는 날 예뻐해 주시는 할머니 권사님이 계셨다. 지금은 너무 오래되어 성함도 떠오르지 않지만 혼자서도 열심히 교회를 다니는 나를 예뻐해 준 그분의 손을 꼭 잡고 항상 교회를 오갔다. 거동이 불편하신 그분을 부축하며 교회를 가다 길거리에서 맛난 걸 사 먹기도 했는데 형편이 넉넉지 않았음에도 그분은 그때마다 한사코 당신이 사주시겠다며 입고 계시던 고무줄 바지 속에서 어디 숨어있었는지 모를 조그마한 동전주머니를 꺼내셨다. 그 안에는 항상 꼬깃꼬깃 접어 놓은 천 원짜리 몇 개가 있었고 그렇게 할머니는 그 소중한 돈을 내게 쓰시며 뿌듯해하셨다.
어릴 때 돌아가신 외할머니, 친할머니가 기억에 없는 나로서는 그분과의 따뜻한 추억이 '할머니'에 대한 기억의 전부다. 그렇게 얼마 후 학교 때문에 이사를 해야 했던 나는 몇 년 후 들린 그분의 부고 소식에 참 많이 울었었다. 생전에 가서 한번 더 뵙지 못한 것이 너무 죄송해 한 동안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다.
이젠 그 당시 내 나이만큼의 세월이 흘렀고 나는 그 할머니 권사님의 손녀가 아닌딸 뻘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함께하는 이 회원분들은 그때의 권사님 보다 훨씬 젊고 건강하시다. 그래도 이분들 틈에서 어린 시절 그 할머니 권사님이 떠오른 건 그분과 함께하며 느꼈던 따스함과 포근함이 이분들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이곳 회원분들과 시간을 보내며 이분들이 살아온 세월만큼 갖게 된 여유와 타인에 대한 배려, 그리고 웃음을 잃지 않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를 배워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