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지키는 방법

난 아이의 플러스 원이 아니다.

by 지오바니

요가 클래스에선 모두들 내 이름을 부른다. 평균 연령이 70은 되어 보이는 회원 분들께서 딱히 나를 부를 다른 명칭이 없으니 자연스레 "연지씨"라고 불러주신다.

선생님께서도 "연지씨~ 지난번엔 어디 다녀왔어요? 며칠 안 보여서 아픈 게 아닌가 걱정했어요." 라며 친근하게 얘기해 주시니 이제 점점 이 클래스에도 정이 든다.


아이를 낳은 이후로는 항상 '어머니' 혹은 '누구 엄마' 이렇게 불리는 게 익숙했다. 회사에서도 이름이 아닌 성을 단 직책으로 불렸으니 가족과 친한 구들을 제외하면 이렇게 이름으로 불리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생각해 보면 어딜 가도 아이와 함께면 자꾸 어머니라고 불려서 영 탐탁지 않을 때가 많았다. 심지어 몇 년 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간호사가 내게 어머니라고 불러서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나랑 나이 차이도 크게 나지 않아 보이는 간호사가 아이와 함께 왔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니 불쾌하기까지 했다.

병원에선 환자, 상점에선 고객, 문화센터에선 회원이라고 부르면 될 텐데 왜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왜 내 정체성을 자신들 편리한 대로 '어머니'에 묶어두는 걸까. 곱씹어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 마로 불리는 게 싫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불리며 내가 아이의 플러스 원으로 여겨지는 것이 받아들이기 힘들 뿐.


그렇기에 나이 지긋하신 '어머님'들로 가득한 이 요가 클래스에서 이름으로 불리는 상황이 반갑기 그지없다. 아직 다른 회원분들의 이름을 알지는 못 하지만 후에 좀 더 친해지면 나도 그분들을 이름으로 불러드려야지라고 다짐 중이다. 나 같이 젊은(?) 사람에게는 항상 누구의 할머니, 어머니 그도 아니면 어르신으로 불렸을 그분들께도 이름을 찾아드리고 싶다는 나의 소소한 획이다.


집에서는 엄마와 사는 덕에 내 이름이 하루에도 몇 차례나 불린다. 어릴 때부터 나와 동생의 이름을 헷갈려하시던 엄마는 요즘엔 가끔 나를 손녀 이름으로 부르시거나 아니면 "연주야" 라며 해외로 이민 간 지 이제 거의 8-9년이 다 된 동생 이름으로 부르실 때도 있다.


꼼군도 결혼한 지 10년이 된 지금도 나를 누구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으로 찾는다. 여전히 '여보, 당신'은 어색해서 죽어도 못하겠다는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우리가 아이가 있는 부부이기 전에 한 남자와 여자로 만났던 연애 시절이 떠올라 흐뭇하다. 더 나이 들어 이름을 부르는 것이 손가락이 오그라들 것 같은 때가 오기 전까지는 계속 이렇게 불러주면 좋겠다.


내 이름을 지키며 살려면 결국 엄마로서가 아닌 내 이름으로 하는 일을 가져야 한다. 회사를 다니든 무엇을 배우러 다니든 봉사활동을 하든 그게 무엇이든 내가 나 일 수 있는 일을 하며 나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휴직 기간 동안 내 이름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이렇게 고민이 또 하나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