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오바니 Apr 28. 2021

마음이 허한 건지 입이 궁금한 건지...

이렇게 망가질 순 없다.

 회사에 다닐 때는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체중계에 올라서는 것이 일상이었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먹어 갈수록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흐트러지기 십상이니 살이 찔까 걱정이라기보다는 그 위에 올라서며 매일 아침 긴장의 끈을 조였다.

 단기 프로젝트 기반의 업무가 많았던 회사 특성상 유독 어리고 풋풋한 20대 초반의 인턴이 많았던 사무실에서 딱 봐도 아줌마 같은 모습으로 다니고 싶지 않았던 것도 열심히 체중계에 올라섰던 이유다. 그렇게 나름의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내 평생 몸무게는 임신했을 때를 제외하곤 언제나 익숙한 숫자들 주위를 맴돌았다.


 그런데 휴직 후 한동안은 체중계를 옆으로 흘낏 바라만 볼뿐 올라서기가 무서웠다. 망가진 바이오리듬과 쉴 틈 없이 먹어대는 주전부리 때문이다. 말 배가 고픈 건 아닌 것 같은데 입이 너무 궁금했다. 몸에 수분이 부족하면 배가 고픈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기에 물도 마셔보고 밥도 제때 충분히 먹는데도 마음이 허한 걸까. 자꾸만 무언가 입에 넣을 것을 찾고 있다.


 오죽하면 꼼군은 내게  "또 먹어?"를 입에 달고 산다. 러다 문득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은 날이 왔다. '휴직 몇 개월 만에 이렇게 망가질 순 없지!'


 그날부터 15층인 우리 집을 계단으로 올라 다녔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면 항상 계단으로 올라오길 두 달째. 처음엔 7층 정도에서부터 숨이 차고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는데 고비가 오는 층수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높아졌다. 10층, 11층, 이젠 13층쯤 와야 힘이 든다. 15층까지 올라와  벨을 누를 때 느껴지는 다리 근육이 찢어질 것 같은 아픔과 내 귓가에 울리는 심장박동 소리가 성취감을 극대화시켜준다. 여기에 걷기 운동도 추가했다. 점심, 저녁을 먹고 집 아래 하천가로 산책을 나가 하루에 최소 8 천보씩 빠르게 걷는. 일주일에 3일씩 하는 요가 최소 하루는 체육센터까지 걸어간다. 왕복 6 천보, 약 50분이 소요되는데 걸어 다녀온 날은 확실히 차를 타고 다녀온 날보다 훨씬 몸이 가볍다.


 그렇게 한 달을 하고 다시 올라간 체중계. 휴직 이전보다 2킬로가 빠졌다. 다시 자신올라온다. 살을 뺄 생각은 없지만 일을 쉬어도 나의 루틴과 몸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감을 북돋다.


 회사에 다닐 때도 걷기가 나의 유일한 운동이었다. 아침에 일찍 도착해 30분씩 빠르게 사무실 근교를 걸으며 나름의 유산소 운동을 했다. 그 후엔 5층이었던 회사를 지하부터 매일 아침 걸어 올라 사무실에 항상 숨을 헐떡이며 들어섰다. 회사 사무실이 있던 50층 이상의 상업건물은 층고가 높아 아파트로 따지면 7-8층 정도 되는 높이다. 그렇게 헐떡거리며 아침을 시작하면 오늘도 맡겨진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계단으로 출근하기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매일 아침 30분, 점심 30분씩 걸으면 적어도 하루 7-8 천보 정도는 채워졌다. 하루 일과가 끝나 집으로 돌아갈 때 손목시계에서 1만보를 넘었다고 알려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이제 집에서 예전의 그 루틴을 되찾으며 언제 어느 순간 다시 출근하게 되더라도 바로 적응해 보이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런 내 모습이 언제 교체되어 필드에 나갈지 몰라 벤치에 앉아 있지 못하고 계속 몸을 푸는 축구 선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입이 바짝 마르지만 이번 경기가 아니라면 다음 경기가 될 수도 있으니 잠시도 긴장을 늦출  없 그런 기분.

'준비되어 있는 자가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을 끊임없이 되뇌며 긴장의 끈을 졸라매는 오늘이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전 18화 내 이름을 지키는 방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