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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ak Sep 25. 2021

잠식

: 어둠 속에서

물 밑으로 가라앉은 게 언제였던가

까만 바다에 내던져지고

내 몸을 휘감은 기포들에 공포에 휩싸였던 시간들

나는 가라앉으며 멀어지는 수면을 바라보았다

시야도 소리도 나의 손끝에 닿았던 세상도

모두 아늑해져 갔지만

나는 그곳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나에게서 떨어져 나온 마지막 공기방울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며

이 고요 속에서 곧 다시 떠오르리라 다짐하였다

아니, 그저 기대하였다 그렇게 되리라


그게 언제였던가

이 어둠과 이 고요의 시간에 무력하게 잠식된 것이

수년 전에도 나는 이 깊은 바다에 가라앉은 적이 있다

그땐 그곳이 바다 깊은 곳이라는 것을 모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에

내가 누구인지 잃어버린 것에

숨을 쉬는 이유를 잃었다

허파로 쉬어내는 숨은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되어

매일 밤 영원한 잠이 들길 바랐다

그렇게 두 눈을 꼭 감고 해류에 휩쓸리다 어느 날

코 끝에 느껴지는 따뜻한 햇살의 향기에 눈을 떴다


다시 까만 바다에 내던져졌을 때

나는 가라앉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침착하려 애를 썼다 때가 되면 떠오르리라

그게 언제였던가

나는 이곳에 갇힌 것만 같다

아니면 나는 아직도 가라앉고 있는 것인가

떠오를 때를 놓친 것만 같다

이곳은 어떤 흐름도 느껴지지 않는 무중력의 공간이다

그 누구도 내가 여기에 빠진 것을 모를 것이다

이번엔 내가 얼마나 기다릴 수 있을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Sauve-m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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