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의 찌끄레기
미련스럽게 두었다.
나이를 하나 둘 먹어갈수록 긴 머리를 할 기회가 적을 것 같아서였는데
그렇다고 해도 너무 미련스럽게 내버려 두었다.
사실 머리를 이토록 길러 본 건 처음이었다.
짧은 머리가 어울리는 편이기도 하고
한 가지 모습에 쉽게 질리는 타입이라
짧았던 머리가 어깨를 넘으면 머지 않아 다시 귀를 드러내게 머리를 잘랐다.
너와 헤어지고 나서
하나 둘 자연스레 버리고 잊을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나눈 우리의 이야기
우리가 거닐던 그곳의 공기
네 손을 잡고 있던 내 손의 감각
모든 것에서 습관적으로 떠오르는 네 생각
변함없이 너에게 안부를 물으려는 내 손가락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사라지면
그것들은 이 우주 안에서 소멸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조금 섭섭했다.
아니, 많이.
내가 의식하지 않지만 너의 흔적이 어딘가에는 남아있기를 바랐고
아마 그게 너와 함께 했던 나의 머리카락이었던 거 같다.
매우 고전적이게도.
그래, 이게 내가 머리를 계속 기르던 진짜 이유였다.
이미 어깨를 넘어섰던 당시부터 줄곧 기르다 보니
어느새 허리에 닿았다.
성인이 된 후에 이렇게 긴 머리는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그 사이 머리를 자르고 싶은 충동이 여러 번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망설여졌다.
일종의 미련처럼.
2년쯤 지나서야
내가 좋아하는 길이로 자를 수 있었다.
새로운 나를 찾고 싶었고 본연의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머리가 잘려나가는 것을 보고 슬펐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슬펐다. 섭섭했다. 그리고 아쉬웠다.
무엇에 대한 마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짧아진 머리만큼 내가 찾고 싶었던 나에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나의 모습.
머리에 우겨넣은 의미를 버리고 나니 긴 머리에 가려진 내가 드러났다.
내 눈 앞에 나는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고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