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댁에서나 드시죠
지인이 어느 날 저녁을 먹다가 씩씩 거리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팀에 여자 신입이 한 명이 들어왔는데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하고 출장도 안 가려고 요리 빼고 저리 빼는 데다가 퇴근 시간 땡 하면 바로 칼퇴하고 팀에 왔으면 점심을 팀원들이랑 먹어야지 어떤 남자 동기랑 먹는다며 회사에 연애를 하러 온 건지 일을 하러 온 건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흉본다고 합니다. 듣고 있다가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혼자 몸 사리고 일을 제대로 안 하려고 하는 것에는 불만을 가질 수는 있지만, 퇴근시간돼서 퇴근하고 점심을 팀원이 아닌 이성인 동기랑 먹는다고 쑥덕거릴 일인가요?
왜 이렇게 꼰대야? 고조선 사람이야 뭐야?
갑자기 과거 제가 사원, 대리일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퇴근시간이 지나고 7시가 되고, 8시가 되고, 11시가 되어서도 직속 상사가 퇴근을 안 하면 혹은 팀장이 퇴근을 안 하면 약속이 있어도 못가고, 심지어는 저녁이나 술자리에 끌려가기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습니다.
제 선배는 매번 밤 10시가 넘어가는 불필요한 야근으로 다들 집에 못 가자 패기롭게 총대를 매기로 하였습니다. 주섬주섬 짐을 싸고 가방을 메고 슬며시 일어나 조심스럽게 말을 합니다. “팀장님, 저 이만 퇴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야, 네가 공무원이야?!!!!!” 벼락같은 호령에 그대로 제자리에 앉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풍경입니다만, 저는 그 시절이 몸서리치도록 너무 싫었습니다.
술자리에서는 왜 이렇게 과장이며, 차장이며, 부장이며 말이 많은지 억지로 웃어주느라 입이 아팠습니다. 물개 박수와 과한 리액션은 필수 지참입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남자 상사들은 왜들 집에를 가기 싫어하는지, 무슨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야근을 해서 팀원들과 저녁을 함께 먹으려고 합니다. 20대 30대 초반인 주임(사원), 대리들은 한창나이에 남자친구/여자친구도 만나고 싶고, 자기 계발, 취미생활 하고 싶은 게 많은데 그럴 새가 없습니다. 하지만 분위기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말을 한다손 치더라도 주말에도 약속 취소하고 나오라며 당당히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바깥에서 친구들을 만나다가도 사무실로 집합되기도 하였습니다. 여름휴가도 눈치 보며 직급순으로 상사들이 고르지 않은 날짜에 겨우겨우 잡아갈 수 있었죠. 고과도 성과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너보다 앞의 기수 선배가 그래도 먼저 진급을 해야지.’하며 어처구니없게 깔아주는 고과를 받아도 말한마디 할 수 없었죠.
하지만 요즘 친구들은 조금 다릅니다. 퇴근 시간이 되면 당당하게 퇴근하겠다고 말하고, 점심에 혼밥도 즐기고 운동도 다녀옵니다. 유연근무제를 적용하는 곳도 많아서 아침에 일찍 출근했다가 일찌감치 퇴근하기도 하고 ‘이건 아닌 거 같다.’ 싶은 내용에는 똑 부러지게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지금의 박과장, 어쩌면 박차장, 박부장들에게는 낯설고 버르장머리 없어 보이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과거 기억을 더듬어보면 주임시절의 나, 대리시절의 나도 분명 이런 분위기에 분노하고 왜 이런 꼰대문화는 바뀌지 않느냐며 울분을 토하지 않았던가요? 과장 이상을 달면서 점점 체제에 순응하게 되고, 과장 이상은 개인이 아닌 회사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에 끄덕이며 내가 싫어했던 과거 상사의 모습을 그대로 리바이벌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제가 아직도 기억하는 과거 훌륭한 사수, 상사들은 때때로 지랄 맞게 하기는 하였으나 정작 내가 실수를 하였을 때는 감싸주고 큰 문제가 있을 때는 앞에 나서서 해결해 주었습니다. 내가 괴롭힐지언정 다른 부서에서 건드리지 못하게 지켜주었습니다. 때로는 독설을 하기도 하였으나 밤을 같이 새우며 실력을 키울 수 있게 가르치고 도와주었고 그것이 지금까지도 저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팀의 막내였을 때는 선배들이 돈을 모아 명절 선물을 주기도 하였죠. 어떤 선배는 몇 차례 진급을 못하고 고배를 마셨을 때 속상한 마음에 무단결근을 할 때에도 상사들이 그때만큼은 너그러이 모른 척해주기도 하였습니다. 명절 전후에 연락 없이 출근을 안 하는 혼자 자취하던 직원을 팀장이 이상한 느낌에 팀원과 찾아가 정말 큰일을 치를 뻔한 것을 사전에 막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너무 힘들고 불합리하던 그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나름의 애정 어린 노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야 이해해 보면 그 안에는 사실 그들 나름대로 에너지 투자가 있었습니다. 저도 직급이 점점 올라가다 보니 알려주고 가르친다는 게 얼마나 에너지를 소비하는지 체감하게 됩니다. 잘못된 거 수정시키고 잔소리하느니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빠르고 결과도 좋습니다. 물론 배우는 게 없는 친구들은 지금은 잠깐 좋겠지만 점점 도태되어 설 자리게 없게 되겠지만요.
요즘 친구들은 야근을 안 하려고 하고 이기적이고 회사에 충성을 할 줄을 모른다고 합니다. 저도 회사에 충성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동료, 선배, 상사들과 회사가 우리에게 준 미션을 함께 수행한 기억은 있습니다.
과연 요즘 친구들이 MZ세대라 그런 걸까요? 물론 회사에서 적당히 낮 시간을 보내고 그 이후에는 내 삶을 즐기거나 파이어족을 위한 밑거름을 닦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를 떠나 그들도 가슴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대다수는 회사에 지원서를 넣을 때 부푼 꿈도 가지고 멋진 커리어를 쌓아가겠다는 미래도 여러 번 그렸을 것입니다.
따박따박 말대답한다고 눈을 흘기거나 메신저로 ‘요즘애들 싹수없다’라고 욕하기 전에 한번 마음을 열고 귀 기울여 들어봅시다. 잘 들어보면 그들이 하는 불만 중에 맞는 말도 많습니다. 그걸 인정하고 잘못된 부분을 수정해야 조직 문화도 바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애정 어린 마음으로 우리 가슴에 남아있는 좋았던 혹은 고마웠던 선배의 모습만 되살려 나부터 손을 내밀어 봄은 어떠할까요?
사람 마음이 세월도 국경도 초월한다는데, 그깟 회사에서야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 금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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