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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Feb 27. 2023

태국인 부부의 사라진 꿈

한 줌 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코리안 드림

훌쩍 오른 전기요금과 난방요금 고지서를 받아보고 충격과 공포를 느꼈던 겨울도 이제 끄트머리에 서있는데 지난 23일 전북 고창 냉골방에서 숨진 태국인 부부 소식을 듣고 안타깝고 서글펐다. 경찰 관계자는 기름보일러와 가스를 쓴 흔적이 없는 밀폐된 작은 방에서 장작불을 피웠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50대 중반의 부부는 10여 년 전 한국에 와서 고창에 정착하여 농사일을 하며 돈을 벌어 태국에 있는 자녀들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열대몬순기후로 1년 내내 무덥고 습한 나라에서 살던 부부가 난방도 없이 우리나라의 매서운 겨울을 버텨내기는 생각보다 더 힘겨웠을 것이다. 몇 년 전 태국이 이상기온으로 북부 산간 지역이 영상 10도까지 기온이 떨어졌을 때 추위를 이기지 못해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중장년층이 속출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고된 농사일에 몸을 녹이지도 못하는 낡고 추운 집에서 죽어간 중년 부부의 사연을 보니 안쓰럽기만 하다. 


10년을 타향살이하다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부부인데 유족은 한국에 와서 시신 수습을 할 형편도 되지 못해서 화장하여 태국으로 보내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너무 애잔하다. 가족과 함께 모여 오순도순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며 낯선 나라에서 고생했던 10년의 세월이 한 줌 재로 돌아간다고 하니 가슴 아픈 일이다.  


싱가포르에서 6년 동안 생활하면서 합법적인 체류였기에 안정적인 지위가 보장되었고,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고통받은 적이 없어도 타향살이의 무게는 확실히 만만치 않음을 경험했다. 만에 하나 싱가포르인과 갈등이 발생하면 내가 모든 것이 불리해지는 것이 이방인의 입장이기에 매사 조심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타향살이다. 그런데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살아온 태국인 부부는 얼마나 마음 졸이고 주눅 든 채 살아왔을까.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욱 춥고 가혹했을 겨울이었다. 50대 중반이면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았던 부부인데 머나먼 타국에서 고생만 하다가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은 봄이 멀지 않아서 더욱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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