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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Feb 28. 2023

천연 디퓨저 붓글씨 연습

잠이 오지 않으면 글씨를 써요.

대부분의 식사를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 편인 나는 냄새에 민감한 편이기 때문에 요리와 식사를 한 후 집안에 배는 냄새를 효과적으로 없애는 일이 큰 과제였다. 창을 열어 환기를 해도 고기나 생선을 굽거나 김치찌개를 하면 먹을 때는 맛있는데 냄새가 잘 빠지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오랫동안 창을 열어둘 수 없는 겨울에는 특히 고민이었다. 남들처럼 향초나 디퓨저를 사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인공향을 싫어하기도 하고, 가습기 살균제와 동일한 유해물질이 뿜어져 나온다는 뉴스를 보니 안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어느 날, 디퓨저 역할을 할만한 대체제를 발견했다. 그날 저녁엔 삼겹살을 구워 다른 날보다 더 기름냄새가 가득한 주방을 치우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진한 벼루와 먹향이라면 음식 냄새를 잡아줄 것 같은 생각이 든 것이다. 몇 년 전에 배웠던 캘리그래피 재료로 가지고 있는 紙筆墨硯(종이, 붓, 먹, 벼루)을 가지고 와서 벼루에 먹부터 갈았다. 향긋한 먹향이 금세 퍼지고 글씨를 쓰니 더 진한 향기가 났다. 기름 냄새가 먹 향기로 중화되는 게 느껴졌다. 


향초나 디퓨저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효과에 스스로 대견했다. 그런데 기왕 글쓰기를 할바에는 아무 글씨나 쓰는 것보다 제대로 배워서 쓰는 게 좋겠다 싶어서 유튜브를 요리조리 찾아보니 서예를 기초부터 가르치는 채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날부터 저녁 식사 후 30분 정도 가로줄 긋기, 세로줄 긋기, 사선 긋기부터 독학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은근히 재미가 있었다. 유튜브를 보면서 글씨 연습을 하다가 또 하나의 효능을 발견했다.


그것은 서예 선생님의 느긋하고 고저 없는 평탄한 어조의 강의를 듣다 보면 잠이 쏟아지는 것이다 !  30분을 채우기가 어려울 정도로 15분 정도 경과하면 졸음이 밀려오고, 어떤 날은 글을 쓰다가 밀어 두고 그대로 잠이 든 적이 있을 정도로 선생님의 강의는 죄송하지만 불면증에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집안의 냄새도 잡고, 불면증도 해결하는 1석2조의 취미생활이 바로 붓글씨 쓰기였던 것이다. 


잠들기 힘들어하는 분들이라면 유튜브 서예 강좌를 보면서 붓글씨 쓰기에 한번 도전해 보시길 권하고 싶다. 붓글씨 쓰기가 너무 번거롭게 느껴진다면 필사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먹향보다 잉크 냄새가 자극적이라서 아쉽긴 하지만 반듯하게 글씨를 써나가다 보면 혈압이 내려가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 것이다. 잠이 오지 않는데 잠자리에서 뒤척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다. 붓글씨나 필사는 준비도 간단하고, 마음만 먹으면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잘 쓰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하루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도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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