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잠시 나를 기다려줬으면…”
부모님이 세상에 살았던 흔적으로 존재하는 자식이기에...
아침에 산에 갔다가 펑펑 울고 말았다. 산에 가서 운동을 마치고 내려가는 길에 어떤 분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울컥한 것이다. 어머니가 노년이 되어 십수 년 동안 겨울만 되면 교복처럼 입고 다니던 어깨 부분에 빨간색이 들어간 파란색 겨울 점퍼를 입은 분을 보게 된 것이다. 가까워져서 보니 남자분이었고, 점퍼도 어머니가 입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저 그 짧은 순간에 어머니의 모습을 본 것이었을 뿐이다.
원래 추위를 타지 않는 어머니지만 한겨울에도 얄팍한 점퍼를 입는 게 마음에 걸려 부피감은 없지만 따뜻한 다운 패딩을 사드리기도 했는데 그 점퍼에 꽂힌 어머니는 새 패딩을 몇 번 입다가도 다시 낡은 점퍼를 입으셨다. 어머니의 애정템이라 차마 정리하지 못하고 아직도 가지고 있다.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다시 꺼내볼 엄두가 나지 않지만 상하지 않게 바람은 통하게 가끔 꺼내봐야 할 것 같다.
어머니의 낡은 점퍼와 몇 가지 유품, 그게 어머니가 남긴 흔적의 전부라고 생각하니 서글프기 짝이 없다. 물론 부모님이 세상에 살았던 흔적으로 존재하는 자식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백 년을 채 살지 못한다. 정말 찰나의 순간 이 세상에 왔다 가는 것이다. 그 짧은 순간 오랜 세월이 지나도 빛나는 업적을 남기는 사람이 되면 세상이 그를 기억할 것이고, 그저 평범하게 살다 가면 그가 세상에 살았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하긴 살아있다 해도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면 존재감이 없는 건 마찬가지긴 하지만 적어도 그의 가족과 지인들에겐 소중하고 귀한 존재다.
내가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부모님이 이 세상에 살았던 흔적으로 내가 존재하기 때문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고운 심성의 부모님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나만의 방식이랄까.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우연히 발견한 아주 오래전 생일에 부모님에게 받은 편지를 꺼내보고 얼마나 찡했는지 모른다. 부모님 속 썩이는 자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잘난 자식도 아니었는데도 나를 대견해하셨다니...
어제 TV를 보다가 중년의 출연자가 그냥 슥 지나가듯 한 말이었는데 가슴에 훅 들어온 말이 있었다. 바쁘게 생활하다 보면 한 달도 휙 지나가버리는데 때로는 “삶이 잠시 나를 기다려줬으면”할 때가 있다고. 세월이 얼마나 빠르게 달려가는지 느끼는 나이가 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삶이 나를 기다려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 내가 삶에 쫓기지 않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어서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