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날이라도 글로 남기면 기록이 된다.
네이버 클라우드를 이용하다 보면 ‘5년 전 사진이 도착했습니다’, ‘10년 전 사진이 도착했습니다’ 알림을 받고 추억에 잠길 때가 있다. 오늘은 18년 전 사진이 도착했는데 배낭여행 당시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의 추억 이 떠올라서 그때 썼던 일기장을 꺼내어 보았다. 내가 일기를 가장 열심히 썼던 때가 그때 아니었나 싶다.
2005년 3월 6일 일요일 오후
끝도 없이 내리는 눈 때문에 프라이부르크에 주저앉은 지 4일째. 햇빛은 쨍쨍하건만 눈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Black Forest가 White Forest가 될 정도로 이곳의 눈은 한참 탄력 받은 상황이다. 날씨 때문인지, 컨디션 때문인지, 배터리 충전 때문인지, 빨래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쉬고 싶은데 핑계를 찾아서인지 이곳에서 머무는 시간이 싫지 않다. 이집트 여행을 할 때는 친구를 따라다니기에 급급했는데 역시 혼자가 되니까 제대로 된 여행이 시작된 것 같다. 돈 씀씀이며, 여행 경로, 컨디션 조절까지 스스로 체크하며 결정해야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눈이 내려주어 한 템포 정리할 시간이 주어진 것 아닐까 하는 어쩔 수 없는 낙관주의적 결론을 내리고 싶다.
아, 일기를 보니 기억이 났다. 이틀 정도 머물 예정이었던 프라이부르크에 쏟아지는 눈 때문에 관광은 포기하고, 동네 상점을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카툰 가게에서 독일식 썰렁한 유머가 담긴 카툰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다가 엽서와 달력을 사기도 했다. 우리나라 축구팬들에게는 차두리나 정우영의 소속팀으로 알려져 있는 프라이부르크는 끝없이 나무가 빽빽하게 펼쳐진 검은 숲(Schwarz Wald)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독일에서 가장 찬란한 햇빛이 드는 도시라는 말에 프라이부르크를 선택했지만 며칠 동안 눈 구경만 질리도록 했던 기억만 남아 있다.
글은 참 신기한 힘을 가졌다. 사진을 봐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짧은 기록으로 남긴 몇 줄의 글을 보니 18년이나 된 옛 기억이 어제일처럼 뚜렷한 영상으로 떠오른다. 그동안 이런 기록의 힘을 실감하지 못한 채 그냥 흘려버린 날들이 아까워진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날이라도 글로 남기면 기록이 된다. 후세에 남길 거창한 기록이 아니면 어떠랴. 그저 하루하루 흘려보내는 날들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놓고 감상할 수 있다면 나에게는 소중한 의미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