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로마여행은
저녁 7시에 시작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by Rosary

오래전 반년동안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다. 숙소는 대부분 게스트 하우스를 선택했다. 요즘은 여행 가기 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숙소를 예약하고 가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당시만 해도 현지에 도착해서 가이드북에 소개된 숙소를 찾아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어떤 도시에 가든 기차역 앞 관광안내소에 가서 숙소 추천을 받아 그중 가장 마음이 끌리는 곳을 골라 가는 게 당시 내 여행의 루틴이었고, 거의 실패한 적이 없었다.


게스트 하우스를 선호했던 이유는 체크인 체크아웃 시간만 지키면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자는 자유로움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오며 가며 만난 배낭여행객에게 듣기로는 민박집은 투숙객들이 아침 7시쯤 모두 일어나서 욕실과 화장실을 줄줄이 이용해서 씻고, 다 같이 아침식사를 하고, 8시쯤 도시 투어를 나가는 게 번잡한 아침 풍경이라는 것이다. 일상을 잊고 여행을 떠나서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여행이 길어져 4개월이 지났을 때쯤 로마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아침, 저녁 식사를 제공하고 숙박비도 상당히 저렴한 편이어서 도심에서 떨어진 게스트 하우스를 가는 것보다 갓성비의 민박집을 이용하기로 했다. 과연 듣던 대로 나를 제외한 모든 여행자들은 아침부터 나갈 준비를 하느라고 북새통을 이루었다. 열명이 넘는 여행자들이 아침마다 씻고, 밥 먹고, 옷 입고...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 늦잠을 잘래야 도저히 잘 수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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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투어를 하지 않는 나는 가장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오늘은 어디에 갈까 여행 책자를 보면서 계획을 세우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나 말고도 아침에 투어를 나가지 않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나보다 한 술 더 떠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늘어지게 늦잠을 자다가 여행자들이 숙소로 돌아올 시간이 되면 그제야 화장을 곱게 한 후 해 질 녘이 되면 나갔다가 깊은 밤이 돼서 다른 여행자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에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녀와 다른 여행자들이 마주치거나, 대화를 할 기회는 있을리가 만무했다.


민박집에 머무는 사람들은 대체 그녀는 어딜 다니길래 매일 저녁에 나가서 오밤중이 되어서 돌아오는 건지 궁금증이 커졌고, 날이 갈수록 상상력은 과해졌다. 마침내 민박집을 떠나기 전날 짐을 싸는 그녀에게 도저히 궁금증을 참을 수 없던 사람들 중 누군가 총대를 메고 일단 밑밥을 깔면서 말을 걸었다.


“여행 잘하셨어요?”

“네, 너무 좋았어요.”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왜 낮에 나가지 않고, 밤에 나가는 거예요?”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그녀에게 쏟아졌다. 그러나, 그녀는 기분 나빠하는 기색도 없이 생글생글 웃으며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을 내놓았다.

“낮에는 햇빛이 따가워서요. 얼굴도 타고… 저녁에 나가면 햇빛도 없고 야경도 예쁘잖아요.”


사람들의 몹쓸 상상력을 머쓱하게 하는 순진무구한 그녀의 대답을 듣고 나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태양이 없는 시간에 나갔을 뿐이었다! 남의 일에 관심이 없는 나였지만 사람들이 그녀의 정체(?)를 궁금해할 때마다 같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뻔하기도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 일에 쓸데없는 관심을 가지거나, 억측을 하다가 무례를 범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관심은 두지 않는 것이 예의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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