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 떴을 때부터 계속 흥얼거려지는 노래가 있다. 오늘은 이상하게 이 노래가 입에 붙어서 나오는데 오페라 아리아인 건 알겠는데 곡 제목을 몰라서 가사 부분을 소리 나는 대로 유튜브에 검색해 보니 어렵지 않게 노래의 정체를 알아냈다. O mio만 타이핑했는데 “O mio babbino caro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란 노래를 찾을 수 있었다.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 Gianni Schicchi>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 라우레타가 아버지 잔니 스키키에게 애원하면서 부르는 아리아다. 애절하고 감미로운 멜로디에 빠져드는 이 곡의 노랫말이 “결혼을 못하게 되면 베키오 다리 위에서 아르노 강으로 빠져 죽을 것”이라는 내용을 알게 되니 헛웃음이 나왔다. 사랑에 눈이 멀어 결혼을 허락해주지 않으면 확 죽어버릴 거라고 위협하는 딸 라우레타를 보며 아버지 잔니 스키키는 얼마나 어처구니없었을까.
<라 보엠. 1896>, <토스카. 1900>, <나비 부인. 1904>, <투란도트. 1924> 등 유명한 오페라를 남긴 푸치니지만 <잔니 스키키>는 상대적으로 생소하다. 그러나 “O mio babbino caro”, 는 투란도트 “Nessun Dorma 공주는 잠 못 이루고”와 함께 가장 유명한 아리아로 누구나 들으면 ‘아, 이 노래!’ 할 것이다. 이 노래가 갑자기 왜 아침부터 흥얼거려졌을까 생각해 보니 며칠 전 영화 <전망 좋은 방. 1985>을 볼 때 흘러나와서였나 보다.
<전망 좋은 방>에서 귀여우면서도 당돌한 매력을 뽐냈던 루시 역의 헬레나 본햄 카터와 그녀를 사로잡는 다소 엉뚱하고 우울한 병약미(?)가 돋보였던 조지 역의 줄리안 샌즈가 가장 돋보였지만, 순진하고 답답한 약혼자 세실 역을 연기한 배우가 강인하고 당당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였다니...
<전망 좋은 방>이 대표작이긴 하지만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던 배우 줄리안 샌즈가 올해 초 등산을 나섰다가 실종되어 시신도 찾지 못한 상태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가족들은 이미 사망을 받아들이고 있다니 아름다운 영화의 여운을 만끽하다가 줄리안 샌즈의 근황을 알고 보니 마음이 착잡했다.
<전망 좋은 방>의 배경이 1900년대 초 이탈리아 피렌체인데 <잔니 스키키> 역시 단테의 작품을 토대로 1299년 피렌체를 무대로 펼쳐지는 오페라다. <전망 좋은 방>을 처음 볼 때에는 피렌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을 때여서 그냥 고풍스러운 도시라는 느낌만 가졌는데 피렌체를 다녀온 후 다시 보니 ‘꽃의 도시’ 다운 아름다운 피렌체의 명소들이 영화 속에 나타날 때마다 반가움과 그리움이 사무쳤다.
마차를 타고 나들이를 가는 피렌체의 목사와 소설가 래거시 부인이 주고받는 대화는 내가 그리는 피렌체 여행의 지침이 되어주었다.
- 살고 있는 저희 눈엔 종종 관광객이 가여워요. 안내서에 없는 건 아무것도 모르죠. 끝낸 것, 가본 곳, 갈 곳만 신경 쓰죠.
- 전 안내서를 혐오해요. 다 아르노강에 던지고 싶어요.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길을 찾는 여행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피렌체 거리를 자유롭게 걷는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