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I
마키아벨리, 체사레 보르자, 그리고 피렌체
평소 책을 사서 쟁여두는 습관이 있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책장에 꽂아놓아 두고 읽지 않는 책들이 읽는 책들보다 훨씬 더 많은 편이다. 보통은 몇 년 안에 읽긴 읽는데 정말 오랫동안 손이 안 가는 책들도 있다. 『군주론』이 바로 그런 책이다. 그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우연히 본 영국 드라마 <메디치 : 마스터즈 오브 플로렌스> 때문이었다.
메디치 은행을 설립한 지오반니 메디치(더스틴 호프만)가 암살당하는 걸로 시작하는 이 드라마는 그의 아들 코시모(리차드 매든)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두오모를 건설하는 이야기와 메디치 가문의 오랜 숙적 알 비치 가문과 대립하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책장 어딘가에 있는 『메디치 가 이야기』를 드라마와 함께 읽으니 복잡한 메디치 가문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수월했다.
『메디치 가 이야기』와 함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군주론』이 눈에 띄었고, 내친김에 정주행을 했는데 거창한 제목에 비해 쉽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여러 번 거론한 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호기심이 동해서 찾아보니 그에 대해 국내에 출판된 책이 있긴 한데 이미 절판된 데다가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두꺼운 책이었다. 읽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도서관에 있길래 냅다 가져와서 읽기 시작했는데 술술 읽혔다.
르네상스 시대의 정경유착 이야기가 뭐 그리 재미있는지, 500년의 간극이 느껴지지 않는 그냥 현대에 벌어지는 이야기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명사들이 추천도서로 『군주론』을 빠뜨리지 않나보다. 이 책 한 권만으로는 전체 그림이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어 『메디치 가 이야기』의 가문의 힘과 영향력을 아는 게 도움이 되었다.
『군주론』 『메디치 가 이야기』 『체사레 보르자』 세 권을 연이어 읽고 여운이 남아 알라딘을 기웃거리다가 표지가 예쁜 『마키아벨리』가 눈에 들어와서 주문했는데 이 책은 피렌체의 두오모와 산타 노벨라 성당, 베키오 다리 등에 대한 추억과 함께 시뇨리아 광장, 메디치 궁 등 가봤어도 그저 스쳐 지나갔던 곳들이 떠오르면서 피렌체를 다시 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예전에 피렌체에서 머물렀던 이틀은 돌아다니는 내내 어디에서도 보이는 두오모와 온갖 미술작품에 압도당한 여행이었다. 다시 피렌체를 가게 된다면 그의 마음을 절절하게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인지 정치 가신으로 복귀를 꿈꾸고 절치부심하며 『군주론』을 썼지만 결국 뒷방 늙은이 신세로 쓸쓸히 세상을 떠난 마키아벨리의 꿈과 좌절을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