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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Apr 03. 2023

飛雪 쌓여있다가
거센 바람에 휘날리는 눈

아름다운 제주에 숨겨진 서글픈 역사 4.3

제주도 여행을 갈 때마다 가본다 가본다 하면서 못 갔던 4.3 평화공원을 지난가을에 드디어 가게 되었다. 4.3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사건의 규모와 참상에 대해서는 자세히 몰랐는데 취재로 접한 허영선 작가의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라는 책을 읽으면서 생각보다 엄청난 사건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후 제주도에 가면 꼭 4.3 평화공원을 찾으리라 마음먹었지만 짧은 일정 때문에 못 가보다가 보름 정도 제주도에 머물 기회가 있어 드디어 가게 된 것이다. 


제주도 곳곳에는 4.3의 흔적이 남아있다. 사망자 2만 5천 명~3만 명 정도를 추산하고, 부상자를 포함하면 희생자 규모가 엄청나다. 당시 제주도 인구가 30만 명이 조금 안되었다는데 인구의 10% 이상의 희생자가 나온 사건이니 오죽했을까. 지금은 이국적인 정취로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섬이지만 1940년대 말 제주는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섬이 아니었다. 고립무원과도 같은 제주에서 벌어진 학살은 제주 주민들은 도망칠 수도 없고, 외지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아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도 없는 절망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도민들이 희생된 참사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제주도민들은 그 일을 입에 담을 수 조차 없었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198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제주도 시민단체와 피해 가족들의 진상 요구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1990년대 들어 제주도의회는 ‘4.3 특별위원회’를 설치, 피해자 신고를 받아 <4.3 피해 조사 보고서>를 내놓았다. 

4.3 평화공원에는 사망자로 신고된 1만 3903명의 이름이 새겨진 각명비가 있지만 더욱 가슴 아픈 공간은 이름조차 찾지 못한 3806명의 행방불명 희생자의 표석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당했는지도 모르고 어느 날부터 사라진 가족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유족들의 참담함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비극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조각작품 '비설 飛雪' 앞에서도 오랫동안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1949년 1월 6일 봉개동 토벌작전에서 두 살배기 딸을 데리고 도망가던 젊은 어머니 변병생(당시 25세)은 토벌대의 총에 맞아 숨졌다. 나중에 길을 지나던 행인이 눈더미 속에 묻혀있던 모녀의 시신을 발견했는데 이 모습을 표현한 조각작품이 '비설'이다. 제주를 상징하는 돌담 안에 있는 이 조각은 눈여겨 찾아보지 않으면 못 보고 지나칠 수 있는데 4.3 평화공원을 간다면 놓치지 않고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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