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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Apr 04. 2023

프리지어가 있는 주방

음식 냄새를 꽃향기로 지우기 

열흘 전쯤 산 프리지어가 만발하여 방안 가득한 꽃향기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라 주방으로 유배를 보냈다. 저녁을 해 먹은 후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도 아침에 일어나 주방에 들어서면 음식 냄새가 남아서 오전 내내 환기를 시키곤 했다. 그런데 프리지어를 주방에 두니 향긋한 꽃향기가 음식 냄새를 싹 가시게 하니 주방에 꽃을 두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어머니가 노년이 되어 체력이 쇠하신대도 김치는 꼭 당신이 직접 담그는 걸 고집하셨다. 주문해서 먹으면 간편하고, 고생도 안 하실 텐데 안쓰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해서 못마땅했었다. 그랬던 내가 요즘 김치를 담가서 먹는다. 원래 요리하는 걸 귀찮아하지 않고, 잘하는 편이긴 해도 김치 담그는 것만큼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5kg 김치를 구입하면 한 달 정도 먹으니 큰 부담도 없어 주문해서 먹는 편이었는데 지난가을 어느 날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져서 한번 만들어볼까 싶어 레시피를 보고 만들어 보았는데 첫 번째 결과물이 그럴듯했다. 김치 담그는 일이 내게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것이었다. 시간적 여유가 많기도 하고, 직접 담그면 확실히 비용을 줄일 수 있기도 하니 그 이후부터 겉절이, 배추김치, 깍두기, 파김치까지 조금씩 담근 것이다. 


오늘 단골 채소가게에 가서 무와 쪽파를 사 와서 깍두기와 파김치를 담갔다. 쪽파를 다듬고 씻어서 준비하는데만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오후 1시쯤 시작해서 5시까지 쭈그리고 앉아 꼼지락거린 후에야 깍두기 한통과 파김치 한통을 완성했다. 완성하고 나면 다음부터는 그냥 사 먹어야겠다 싶지만 다음이 되면 어떤 김치를 담글까 레시피를 찾아보곤 한다. 


확실히 들어가는 노고에 비해 결과물이 보잘것없는데도 김치를 담그기 시작하니 계속하게 되고 시중에서 판매하는 김치에 손이 안 간다. 밥과 반찬으로 구성된 한식 식단은 하루에 한 번 먹을 뿐이라 김치가 헤프지도 않을뿐더러 몸을 움직여서 재료를 준비하고 먹거리를 만드는 동안 몇 시간만 투자하면 한 달 먹을 김치가 뚝딱 완성되니 그 과정도 즐거웠다.  


김치는 마늘, 생강, 쪽파, 새우젓, 멸치젓… 등 냄새가 심한 재료들이 대부분이다. 김치를 담그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주방에 냄새가 진동하는 건 진짜 괴로운 일이다. 김치를 완성하면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도 냄새를 빼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향기가 강한 프리지어를 주방에 가져다 놓으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프리지어 꽃이 질 때쯤 히아신스를 들여놓을까 생각 중이다. 


역시 인공향보다는 자연향이 자극도 적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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