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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Apr 09. 2023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

경기에서 담아내지 못한 ‘기록’의 가치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은 그 당시 남자 어린이들의 생활을 온통 뒤흔든 사건이었다. 즐길만할 놀이가 부족했던 전국의 남자 어린이들이 공통 관심을 갖고 열광한 최초의 콘텐츠가 프로야구가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의 추억은 너무나 강렬한 것이기 때문에 원년팬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프로야구를 시청하며 여가를 보낸다.


한창 일과 연애로 바쁜 2030들이 몇 시간씩 하는 야구경기를 시청할 여유는 별로 없을 것이다. 직장에서 중간관리급이 되고, 결혼해서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는 4050의 중년 가장들이 취미를 붙이기 좋은 게 바로 야구 시청인 것 같다. 나 역시 한창 일하던 30대까지는 야구를 볼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지만 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해서 여유가 생기기 시작할 무렵 야구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4월부터 10월까지 월요일을 제외한 주 6일 동안 경기를 한다는 것은 일상이 무료한 중장년층이 마음 붙이기에 꼭 맞는 스포츠인 것이다. 화딱지 나게 경기를 내주면 그깟 공놀이 다시는 안 본다고 결심하다가도 다음날 경기 시간인 6시 30분이 되면 TV 앞에 자리를 잡게 되는 게 야구팬의 일상이다.


야구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9회까지 평균적으로 3시간 내외가 소요되는 스포츠를 본다는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주말의 채널 선택권 없이 모든 공중파 채널에서 야구 중계를 할 때 짜증이 났었으니까. 그래도 당시 야구는 경기가 끝나면 더 이상 즐길 거리가 없었던 반면 전 경기 중계와 인터넷 미디어, 유튜브 등 콘텐츠를 즐길 시간이 무한정 늘어난 요즘은 경기가 끝나도 찾아볼 것이 너무 많다. 


야구 경기만 보는 팬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야구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기록’을 찾아보고, 확인하기 시작하면 야구를 즐기는 시간은 몇 배로 늘어난다. 그리고 그 ‘기록’은 정말 잘한다고 생각한 선수가 사실상은 별로 영양가 없는 선수라는 것을 알려주고,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활약을 하는 것 같았던 선수가 사실은 정말 훌륭한 선수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기록은 매월 매년 달라지고 쌓이면서 더 큰 기록이 된다. 그래서 야구의 ‘기록’은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 

Statiz에서 확인할 수 있는 1982년 프로야구 원년 타자들의 기록 

나 역시 이런 기록을 찾아보는 것을 좋아한다. 기록은 야구 경기에서 보여주지 못한 진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고, 순전히 느낌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선수가 팀에 크게 공헌하는 선수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수학엔 젬병이었지만,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온갖 지표와 그 지표를 도출하는 공식은 수긍할 만하고 흥미롭다. 19세기부터 시작한 본격적인 야구는 2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아직도 새로운 이론과 공식이 만들어진다는 면에서 진화하는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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