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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Apr 08. 2023

나무의 삶

나는 모감주나무가 되고 싶어요.

“오빠, 난 다시 태어나면 나무가 될 거야. 한번 뿌리내리면 다시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될 거야.”


23년 전 멜로드라마의 클리셰란 클리셰는 모두 들어간 드라마가 있었다. 송혜교, 송승헌, 한채영, 원빈, 문근영 등 비현실적으로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 때문에 몰입하기 힘들었던 히트작 <가을동화>가 그것이다. 이런 종류의 과한 멜로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정주행을 하지 않았지만, 이 대사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왠지 마음이 찡하고 공감이 되었다. 


요즘 부쩍 ‘나무의 삶’에 관심이 많아져서인지 세상을 떠나면 한 그루 나무가 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 육신이 나무의 양분이 되는 그런 마지막을 생각하면 슬프지만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래서인지 요즘 수목장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부모님을 수목장에 모시면서 겪어보니 수목장이 생각처럼 낭만적이거나 여유롭지 않다는 걸 알았다. 한 사람이 묻힐 공간은 생각보다 비좁고, 그럴듯한 나무와 함께 하려면 예상보다 더 큰 금액이 필요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수많은 나무를 만나게 된다. 그 많은 나무들 중에서도 유독 마음이 가는 나무가 있고, 나무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 그 자리에서 오래 머물게 된다. 최근에 만난 나무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나무는 제주 거문오름에서 본 나무다. 굵고 튼실한 가지가 마치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늠름한 모습을 보면 나까지 힘이 솟아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거문오름에서 만난 나무

라오스 루앙 프라방 어느 사원에서 봤던 거대한 보리수나무도 기억이 난다.  15세기 무렵 가뭄이 계속되어 사람들이 비 내리길 간절히 기원하니 보리수나무 작은 구멍에서 물이 솟았다는 전설이 있는 이 나무는 멀리서 보기에도 위풍당당한 포스가 대단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나무에서 자신의 속 이야기를 털어놓고 소원을 빌기도 했을 것을 생각하니 나무는 이미 영물(靈物)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루앙 프라방의 보리수나무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된다면 심고 싶은 나무는 모감주나무다. 하늘 향해 꽃대가 솟아있는데 그곳에 촘촘히 달리는 노란 꽃도 아름답고, 꽃이 지면 꽈리 같은 주머니 속에 까맣고 단단한 열매를 맺는데 그 모습이 너무 실속 있어 보인달까. 모감주나무는 척박한 땅에서 나고 자라 물이 부족해도 잘 자라서 공원이나 도심의 조경수로 사랑받는다. 여름이 되면 눈부시게 노란 꽃들이 달린 모습은 멀리서 보면 크리스마스 트리에 황금종을 달아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나는 나중에 모감주나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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