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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Apr 23. 2023

그레이트이스턴 호와
카타르 월드컵의 비극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가난한 노동자의 삶

런던 올림픽 개막식은 11년이 지났어도 문화적 자부심이 가득했던 명장면이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을 만큼 최근 올림픽 개막식 가운데 최고라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꼽으라면 역시 여왕과 제임스 본드가 함께 등장했던 장면이겠지만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영국의 위대함을 설파했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에 도전하면서 일생을 불사른 영국의 공학자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1806-1859)이다. 


그는 겨우 스무 살에 템즈강 아래 첫 터널 제작을 시작으로 증기선, 철도 건설에 뛰어들었고, 1853년 마침내 세계 최대 선박인 그레이트이스턴 호 제작에 착수했다. 이 배는 길이 213m, 너비 36.5m, 깊이 17.6m, 8,915t으로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선박을 만들겠다는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불태웠다.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던 꿈의 선박은 10여 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야 세상에 공개되었지만 브루넬은 1860년 뉴욕으로 향하는 처녀항해를 지켜보지 못한 채 1859년 세상을 떠났다.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 1857

엄청난 규모의 선박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었는데 비좁은 공간에서 작업하기 위해 열 살 남짓의 어린아이들이 노동자가 되어 현장에 투입되었다가 참담한 사고로 죽거나 다치는 일이 빈번했다. 이중선체의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 작업하다가 한순간의 부주의로 손과 팔이 잘려나가거나 추락해서 사망하는 일이 잦았고, 심지어 시신 수습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레이트이스턴 호의 노동자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어 누가 어떤 경로로 사고를 당해 사망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다.


19세기 과학기술의 총아로 각광받은 그레이트이스턴 호는 크고 작은 사고와 그에 따른 수리 등으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으로 재정이 끝없이 투입되다가 10여 년의 운항 후 애물단지로 전락해 1888년 고철 처리장으로 끌려가 철거되었다. 그제야 건조 당시 배의 밑바닥으로 추락했던 노동자와 소년들의 해골이 발견되었다. 그레이트이스턴 호는 누군가에게는 찬란한 미래였겠지만,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아 있었던 어린이들의 목숨이 담보가 된 비극이 숨어 있었다. 그레이트이스턴 호가 브루넬의 계획대로 수많은 승객을 싣고 유럽과 호주, 미국을 잇는 선박이 되었다면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일 수도 있었겠지만 시대가 감당하기엔 벅찬 프로젝트였던 것 같다. 


그레이트이스턴 호의 위용에 압도당한 작가 찰스 디킨스가 ‘지붕 위로, 나무꼭대기 위로, 마치 거대한 성당처럼 당당하고 고요하게 서 있네.’라고 묘사한 것만 봐도 이 배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규모였는지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배를 왜 만드는지 이유도 모른 채 1실링을 벌기 위해 현장에서 일하다가 목숨을 잃고 수십 년 뒤 해골로 발견된 어린아이들의 참혹한 서사가 훨씬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그레이트이스턴 호 건조 현장

지난해 11월 최초의 겨울 월드컵이 카타르에서 개최되었다. 카타르는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에 육박하는 세계 6위의 부자 나라지만 인구 290여만 명, 정식 시민권자는 고작 40여만 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2010년 월드컵 개최를 확정한 후 월드컵 경기장, 공항, 고속도로, 호텔 등 수십 개의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인도, 방글라데시, 네팔,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에서 약 200만 명의 이주 노동자를 동원했다. 


이들은 고작 하루 임금 1만 3천5백 원 정도를 받고 50℃까지 치솟는 사막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가 그중 약 6천7백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20대~50대 사이의 건장한 남자들이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사망했지만 대부분 ‘자연사’로 처리되었다는 것도 충격적이었다. 중동에서 벌어진 휘황찬란한 월드컵을 위해 엄청난 생명이 희생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축제를 즐겨도 되는 건가 싶은 의문이 들기도 했었다. 


160년이란 세월이 흘러도 가난한 노동자의 삶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참고 『강철혁명』 데보라 캐드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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