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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Apr 30. 2023

퇴근 후 한 끼의 추억

싱가포르 직장생활의 피로를 풀어줬던 뉴 하버 카페

유튜브에서 거의 보지 않는 콘텐츠가 먹방과 여행이다. 남이 먹고, 보고, 즐기는 걸 보면서 대리만족한다는 건 내 정서에 전혀 부합하지 않아서다. 그런데 단 하나의 예외가 있는데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 TV>가 그것이다. 음식 자체보다 분위기를 즐기는 채널의 콘셉트가 마음에 들어서 몇 번 보게 되었고 JTBC에서 이런 콘셉트를 그대로 가져온 <퇴근 후 한 끼>를 보니 싱가포르에서의 추억이 떠올랐다.


6년 동안 싱가포르에서 생활하면서 자주 갔던 단골 맛집이 여러 곳이 있다. 저렴한 가격에 칠리크랩을 비롯한 각종 해산물을 먹을 수 있었던 뉴튼 서커스의 호커센터, 기막히게 맛있는 페라나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블루 진저, 시원한 강변에서 맥주 한잔 하면서 피로를 풀 수 있는 콜러키의 강변 카페들까지 퇴근 후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낼 만한 곳들이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할 때는 일이 늦게 끝나는 편이어서 퇴근하고 술 한잔 할 여유가 없었는데 싱가포르에서는 대체로 6시 전에 칼 퇴근하는 데다가 이동거리도 짧아서 평일에도 친구를 만나서 여유 있는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즐겨 찾던 곳은 사무실 바로 앞에 위치한 뉴 하버 카페였다.


주 1~2회 정도 갔을 정도로 자주 간 이유는 해피아워(저녁 8시 전) 시간에 맞춰가면 저렴한 가격으로 맥주와 안주를 즐길 수 있고, 해산물부터 고기 요리까지 너무 맛있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퇴근 후 찾았지만, 간혹 일하다가 열받을 때 이곳이 문 여는 오후 3시에 맞춰 가서 낮술을 마시는 경우도 있었다.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 땡땡이치기 좋은 장소이기도 했던 것이다.

국물이 시원한 벨기에식 조개요리, 두툼한 패티의 육즙이 풍부한 버거, 돼지고기를 바싹 구운 폭찹, 닭날개와 닭봉을 매콤하게 양념한 핫윙, 대구를 바삭하게 튀겨 풍미를 살린 피시 앤 칩스 등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메뉴들과 시원한 맥주를 함께 하면 두통과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과음을 하는 일 없이 그냥 기분 좋을 정도의 술과 안주를 즐길 수 있어 퇴근 후 한 끼의 정석이랄까.


주방과 홀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가족 구성원이어서 5년 넘게 다니다 보니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숙해졌는데 귀국하게 돼서 이제 못 온다고 하니 섭섭하다고 포옹하면서 덕담을 주고받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던 기억이 떠오른다. 혼자라도 정을 나누고 안부를 주고받을 정도의 단골집 만들어두는 습관이 이때 뉴 하버 카페의 다정했던 기억이 있어서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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