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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May 10. 2023

이제는 너무 낯선, 종로에서

그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잘 계시는지...

종로는 내 본적지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때부터(그 이전은 알 수 없다.) 살던 곳이고, 독립문에 올라가서 놀았다는 아버지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관공서에서 서류를 떼면 언제나 마주하는 낯익은 곳인 동시에 아주 어릴 때부터 추억이 참 많은 거리다. 서울 강북에서 살았던 내가 ‘시내’ 나간다고 했던 곳이 종로였다. 

어린 시절 처음으로 안경을 맞추러 간 곳도, 새 옷을 사러 간 곳도 종로였다.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종로서적이나 교보문고에 책을 사러 가곤 했다. 대학 시절에는 파고다 어학원에도 반년쯤 다녔던 것 같고, 태평로에서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한 관계로 골목골목 맛집도 빠끔히 알고 있었지만 종로의 추억은 2000년 초반 끝을 맺는다. 이후의 직장생활은 대부분 강남에서 했기 때문에 좀처럼 종로에 갈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싱가포르에서 살았고, 귀국했고 가끔 인사동 지필묵 가게에 들른 적은 있지만 오늘 종로의 세종대로를 정말 오랜만에 걸었다. 

예전 피맛길에는 휘황찬란한 고층건물들이 들어서 어두컴컴할 지경이고, 그나마 광화문 우체국과 일민미술관이 있는 블록만 내가 알던 종로의 모습이 조금 남아있을 뿐이었다. 종로는 늘 친구와 함께였다. 영화도 보고, 공연도 보고, 밥도 먹고 차도 마셨던 추억이 가득했던 종로는 20여 년의 세월 동안 추억의 장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주 오래전부터 자리를 지켰던 보신각과 고종이 즉위한 지 40년을 기념해서 세운 칭경기념비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 화려한 거리 한 구석에 옹색한 분식집이 너무 이질적이어서 한참을 들여다봤다. 저기서 떡볶이와 어묵을 먹었던 것 같기도 한데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 가물가물하다. 매일매일 함께 일했던 김 과장님, 구대리님은 어떻게 지낼까. 직장 선배들과 어울려서 자주 들렸던 단골집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한겨울에 온몸을 녹여주던 따뜻한 정종 한잔과 맛깔난 안주를 즐겼던 그 집의 분위기가 그리워진다. 그때 그 종로거리를 오가던 숱한 사람들은 지금 다들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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