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너무 낯선, 종로에서

그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잘 계시는지...

by Rosary

종로는 내 본적지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때부터(그 이전은 알 수 없다.) 살던 곳이고, 독립문에 올라가서 놀았다는 아버지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관공서에서 서류를 떼면 언제나 마주하는 낯익은 곳인 동시에 아주 어릴 때부터 추억이 참 많은 거리다. 서울 강북에서 살았던 내가 ‘시내’ 나간다고 했던 곳이 종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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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처음으로 안경을 맞추러 간 곳도, 새 옷을 사러 간 곳도 종로였다.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종로서적이나 교보문고에 책을 사러 가곤 했다. 대학 시절에는 파고다 어학원에도 반년쯤 다녔던 것 같고, 태평로에서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한 관계로 골목골목 맛집도 빠끔히 알고 있었지만 종로의 추억은 2000년 초반 끝을 맺는다. 이후의 직장생활은 대부분 강남에서 했기 때문에 좀처럼 종로에 갈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싱가포르에서 살았고, 귀국했고 가끔 인사동 지필묵 가게에 들른 적은 있지만 오늘 종로의 세종대로를 정말 오랜만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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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피맛길에는 휘황찬란한 고층건물들이 들어서 어두컴컴할 지경이고, 그나마 광화문 우체국과 일민미술관이 있는 블록만 내가 알던 종로의 모습이 조금 남아있을 뿐이었다. 종로는 늘 친구와 함께였다. 영화도 보고, 공연도 보고, 밥도 먹고 차도 마셨던 추억이 가득했던 종로는 20여 년의 세월 동안 추억의 장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주 오래전부터 자리를 지켰던 보신각과 고종이 즉위한 지 40년을 기념해서 세운 칭경기념비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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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화려한 거리 한 구석에 옹색한 분식집이 너무 이질적이어서 한참을 들여다봤다. 저기서 떡볶이와 어묵을 먹었던 것 같기도 한데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 가물가물하다. 매일매일 함께 일했던 김 과장님, 구대리님은 어떻게 지낼까. 직장 선배들과 어울려서 자주 들렸던 단골집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한겨울에 온몸을 녹여주던 따뜻한 정종 한잔과 맛깔난 안주를 즐겼던 그 집의 분위기가 그리워진다. 그때 그 종로거리를 오가던 숱한 사람들은 지금 다들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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