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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May 19. 2023

팅커벨의 습격

탁 트인 푸른 하늘 아래서 야구를 보고 싶지만...

잠실 야구장 직관을 마지막으로 갔던 게 코로나 시국 전이었으니 벌써 3년이 된 것 같다. 사실 야구를 좀 더 재미있고 심도 있게 즐기기엔 다양한 중계화면이 제공되는 집관이 훨씬 좋다. 생동감 넘치는 현장의 분위기를 공유한다는 것 외에 직관의 장점은 그리 많지 않다. 일단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가고, 테이블석이 아닌 일반 좌석은 비좁고 불편하다. 내가 직관을 가서  제일 싫은 건 매너 없는 관중들이 선수들에게 반말과 욕설을 하는 걸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라운드를 향해 막말을 쏟아내는 분들은 대체로 원년팬이 무슨 벼슬인 줄 아는 나이 지긋한 양반들인데 나도 원년팬이지만, 볼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순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은 대부분 직관도 자주 오기 때문에 내야석에 거의 지정석이 있다시피 한 분들이라 그런 꼴을 보기 싫으면 외야석으로 가야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눈이 침침한데 외야석에서는 경기를 제대로 보기 힘드니 울며 겨자 먹기로 파이터들이 모여있는 내야석에 앉기 마련인데 경기 시작하기 전부터 귀를 씻고 싶은 토크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관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일단 야구장의 푸른 잔디, 그와 대비되는 확 트인 푸른 하늘 아래 3시간 이상 앉아만 있어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야구팬이라면 직관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광주 KIA 챔피언스 파크, 대구 라이온즈 파크, 창원 NC 파크 등 최신식 구장에 비해 1982년에 지어진 잠실 야구장의 노후화 문제는 오래전부터 거론되었고, 새로운 구장은 개방형이 아닌 돔구장 건설로 방향을 잡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 안돼... 나는 클래식한 야구팬이라 돔구장을 정말 싫어하는 편이었는데 홈구장이 돔이라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몇 년 전까지는...     

그런데 점점 심해지는 미세먼지, 여름에는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 많아지고 있어 돔구장을 받아들여야겠다고 마음을 돌리고 있는 중인데 18일 잠실 경기를 보고 돔구장이 절실히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잠실  직관팬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팅커벨’이 출몰한 것이다. 매년 여름 비가 온 후 극성을 부리는 동양 하루살이가 때 이른 무더위에 올시즌 처음으로 잠실을 습격했는데 크기가 4~5cm나 되는 벌레들이 하늘과 잔디에 온통 뒤덮이는 모습을 보니 돔구장을 찬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하는 선수들과, 관중들에게 비처럼 쏟아지면서 시야를 가리는 ‘팅커벨’들을 보니 온몸이 근질근질한 느낌이었다. 아무리 탁 트인 하늘 아래 야구장을 좋아하지만 이상기후로 변수가 많은 날이 많아지는 상황에서는 돔구장이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주위에 거슬리는 고층 건물 없이 산에 둘러싸인 대구 라이온즈 파크 같은 구장을 꿈꾸었지만 서울의 새 야구장은 결국엔 돔구장으로 만나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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