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잭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단테의 조각배"가 안내하는 지옥도

by Rosary

요즘 새벽에 자꾸 깨는 바람에 영화채널에서 새벽에 편성한 영화들을 여럿 보게 되었다. 어제 새벽에 채널을 돌리자마자 피칠갑을 한 맷 딜런이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안절부절못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는데 심상치 않은 이 영화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살인마 잭의 집. 2019>이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브레이킹 더 웨이브. 1996>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으며 <어둠 속의 댄서. 2000>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2000_by.jpg 어둠 속의 댄서. 2000

내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본 건 <백치들. 1998>이었는데 돌아이 감독이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무려 니콜 키드먼을 캐스팅한 <도그빌. 2003>을 보고 대단한 재능을 가진 감독인 건 분명하다 싶었다. 연극무대 같은 조그마한 세트에서 제작한 이 영화는 무려 3시간이나 되는 러닝타임 동안 “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끝을 맺으려고 하나”싶은 의문을 가지고 파국을 향해 몰아치는 힘이 엄청난 작품이었다. 역시 찜찜한 영화 만드는데 비상한 재주가 있는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는 좋아하지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는 내 취향은 아니었다.

2003.jpg 도그빌. 2003

이후에도 <킹덤. 2004>, <안티크라이스트. 2009>, <멜랑콜리아. 2011>, <님포매니악. 2013> 등 경악할만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열혈팬과 안티팬을 동시에 양성했다. 그의 작품은 불편하고, 불쾌한 설정과 장면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어둠 속의 댄서>의 주연이었던 비요크는 자신을 착취해서 칸 영화제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고 비판했고, <도그빌>에 캐스팅된 니콜 키드먼에게 출연을 만류하는 편지까지 써다고 하니 라스 폰 트리에를 얼마나 극렬하게 싫어했는지 알 수 있다.

20190221_3.jpg 살인마 잭의 집. 2019

평생 우울증에 시달린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살인마 잭의 집. 2019>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모든 지적인 성과와 철학적 은유, 예술적 장치까지 총망라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로 완성되었다. 특히 가장 마지막 장면에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지옥으로 향하는 배에 올라탄 잭과 그를 안내하는 버지, 배 아래서 허우적대는 인물들을 한 화면에 잡아 외젠 들라크루아의 <단테의 조각배. 1822>를 형상화한 장면은 너무나 강렬한 이미지로 남는다.

20190221_2.jpg 살인마 잭의 집. 2019

잔뜩 어두워진 하늘, 거칠게 몰아치는 바다 위에 지옥의 무리들이 배를 붙들고 아우성치는 와중에 흰 옷을 입고 붉은 두건을 쓴 단테는 갈색 망토를 두른 스승 버질에 의지해서 위태롭게 서 있고, 곧 눈앞에 벌어질 지옥의 전초전을 그린 듯하다. <살인마 잭의 집>에서 악의 일대기를 완성한 잭 앞에 펼쳐질 지옥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dante-and-virgil-in-hell-by-delacroix-12879.jpg 단테의 조각배. 1822

*영화의 마지막 장면, 냉동창고에서 잭이 살인을 하려고 모아둔 사람들 가운데 눈에 익은 사람이 보인다. 어, 저 사람 유지태 아냐? 닮은 사람인가? 아니 너무 똑같은데... 검색해서 확인해 보니 유지태가 맞았다.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라면 1분 정도의 짧은 분량임에도 유지태가 기꺼이 출연을 하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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