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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May 23. 2023

나도 고생해! 누가 고생 안 한대?

권위는 남이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우는 것

5월 20일 잠실 LG-한화전 9회까지 1:1 승부를 내지 못하고 연장 12회 말 2 아웃 상황에서 갑자기 권영철 주심이 LG 더그아웃으로 향해 박해민에게 뭔가 이야기를 했고, 그에 대해 박해민 선수가 격하게 대응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 어리둥절한 상황은 나중에 권영철 주심과 박해민이 주고받은 대화가 공개되면서 의문이 풀렸다. 


12회 말 첫 타자로 나선 박해민의 초구가 스트라이크 존에서 벗어나는 공을 권영철 주심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하고 이어서 박해민이 잘 친 타구가 한화 1루수 채은성에게 잡혀 아웃되었다. 박해민에 이어 홍창기도 삼진으로 2 아웃이 되어 경기 종료까지 아웃 카운트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경기를 진행하던 권영철 주심이 갑자기 LG 더그아웃으로 향해 박해민에게 이런 말을 던진 것이다. “야, 나도 고생해, 지금.” 그러자 박해민이 “누가 고생 안 한다고 했어요?”라고 되받아쳤고 분위기가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이 장면이 어처구니없었던 건 상황도, 형식도, 내용도 모두 부적절했던  것이다. 타석이 이미 지나가서 자리로 돌아가 있는 선수에게 주심이 더그아웃까지 찾아가서 일종의 훈계를 한 것, 심판이 선수에게 반말을 한 것, 내 고생을 알아달라고 한 것까지 상식 밖이었다. 선수에게 경고를 하고 싶었으면 그 선수의 타석에서 경고를 했으면 되는 것이었고, 스트라이크 존에 불만을 가진 걸 눈치챘다면 그에 대해 설명을 하면 될 일이지 “야, 나도 고생해, 지금.”이라니 이 무슨 어이없는 신세타령이란 말인가.


따지고 보면 야구만큼 심판의 존재감이 큰 스포츠도 없다. 때문에 심판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쏟아지고, 심판들도 고충이 크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오심과 미숙한 경기 진행이 거듭되면 심판에 대한 선수와 팬들의 불신과 원망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날 경기도 9회 말 심판진의 미숙한 경기 진행과 오심으로 어수선하게 만들었고, 스트라이크 존마저 들쑥날쑥하니 선수와 팬들 모두 불만이 가득한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자신의 고생을 알아달라는 심판의 말이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일은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자기가 맡은 일을 완벽하게 수행한 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게 순서다. 본인이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고생하는 거 알아달라고 호소해 봐야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나도 고생해.”라는 넋두리에 “누가 고생 안 한대?”라는 냉담한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권위라는 것은 남이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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