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을 켤 때 망설이는 이유

1994년 그해 여름은 어떻게 견뎠을까.

by Rosary

더워지면 선풍기나 에어컨 개시일을, 추워지면 보일러 개시일을 달력에 기록하는데 작년 선풍기를 꺼낸 건 5월 23일, 에어컨 가동은 7월 5일부터였다. 올해는 5월 20일 선풍기를 꺼내 아직까지는 에어컨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이틀 동안 비가 쏟아진 후 날씨가 확 더워지는 바람에 올여름은 얼마나 더울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해마다 여름만 되면 에어컨을 발명한 윌리스 캐리어에 대한 재평가와 찬사가 쏟아질 정도로 매년 점점 더 무더워지는 것 같다.


살면서 가장 더웠던 여름은 아무래도 1994년이었던 것 같다. 그해 서울은 하루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날이 무려 34일이나 되었고, 7월 23일 38.2도, 7월 24일 38.4도로 2018년 8월 1일 39.6도로 역대 최고기온을 기록하기 전까지 가장 더웠던 여름으로 남아있었다. 지금은 가구당 에어컨 보유대수가 0.97대로 에어컨 없는 집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1994년 당시만 해도 에어컨 보급률이 9%에 불과해서 대부분 가정은 선풍기에 의지해 더위와 싸워야 했는데 하루종일 선풍기를 가동하면 모터가 열을 받아 뜨거운 바람이 나와서 선풍기가 무용지물이 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낮에는 에어컨이 설치된 은행이나 도서관을 찾았고, 밤에는 더위를 식힐 만한 곳을 찾아 한강이나 계곡으로 퇴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기온이 25도 이상인 열대야가 무려 14일이 지속되는 역대급 폭염이었고, 열대야를 견디기 위해 집 앞 골목길에 돗자리를 펼쳐 놓고 온 가족이 잠을 자는 풍경도 볼 수 있었다. 지금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온갖 진풍경이 펼쳐졌던 그해 여름은 30여 년이 되도록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여름은 더워야 하고, 겨울은 추워야 한다지만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는 상황이라 더위와 추위가 점점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걱정스럽다. 기상청에서는 일찌감치 ‘슈퍼 엘니뇨’ 현상으로 올여름 폭염과 폭우 등 기상이변을 전망했다. 5월 중순 강릉의 낮 최고 기온이 35.5도까지 치솟는 등 무 잘리듯이 봄은 사라지고 여름이 시작되었다.


적도에 위치하여 연중 기온이 32~34도를 오르내리는 싱가포르에 살 때에는 어딜 가나 에어컨을 풀가동하는 환경이라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기보다 선득거려 영 개운치 않았다. 전기요금 폭탄도 걱정이지만 에어컨을 빵빵 틀수록 지구가 점점 더 뜨거워지는데 일조하는 기분이라 속 편하게 에어컨 가동을 못하겠다. 그래서 최대한 에어컨 가동을 늦추려고 6월까지는 버티려고 하지만 한 달을 참을 수 있을는지…

keyword
이전 13화가면 속 진짜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