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自然死)를 소망하면서…

범죄 피해자와 유족의 고통을 생각합니다.

by Rosary

30대까지만 해도 범죄, 스릴러 장르의 소설과 영화,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범죄 르포 프로그램을 즐겨 봤었다. 그런데 중년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런 것들을 멀리하게 된다. 젊은 시절에는 정교하게 짜인 음모와 범죄 이야기가 흥미진진했고, 허구 속 인물일 것만 같은 사람들이 현실 세계에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범죄 르포 프로그램이 재미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사건들의 피해자와 유족들에 감정이입하면서 비극적인 사건이 엔터테인먼트로 과잉 소비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어느 순간부터 거북해졌다.


사람이 질병이나 사고, 혹은 100살까지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의 우주가 사라지는 일이고, 애처롭고 마음 아픈 일이다. 그런데 심지어 사람이 사람을 살해해서 생명을 빼앗는 일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끔찍하고, 처참한 일이다. 철이 없던 시절에는 생명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크게 와닿지 않았기 때문에 ‘범죄’라는 장르의 창작물을 그저 ‘재미’로 소비했었던 것 같다.


범죄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저런 사건으로 목숨을 잃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지만, 인간의 의지로 결정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가혹한 운명이 피해 가기만을 기도할 수밖에 없는 무력함을 절실하게 느낄 때가 여러 번 있었다. 이성교제를 하거나,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곳곳에 지뢰처럼 숨어있는 미치광이들을 무슨 수로 알아차린단 말인가. 범죄에 희생된 피해자들 중에서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알아차린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5월 말 부산에서 온라인 과외앱으로 만난 20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하는 잔혹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이 충격적인 건 고작 23살 밖에 안된 여성이 그저 살인이 하고 싶다는(본인 진술에 의하면)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사체까지 훼손했다는 것이다. 단지 과외를 구하러 나섰다가 참혹하게 살해된 피해자와 유족의 참담함은 감히 상상조차 못 할 일이다.


일종의 묻지 마 살인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피해자의 비극도 비극이지만 피해자 유족과 지인들이 평생 가슴에 안고 살게 될 고통과 슬픔은 치유할 수도, 위로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그저 평범한 자연사(自然死)로 생을 마감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범죄로 인한 이별은 떠난 사람은 물론 남아있는 사람의 삶도 파괴되는 일이다. 그런 엄청난 비극에 섣부른 억측이나 불필요한 호기심으로 피해자와 유족을 상처 주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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