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sary Jun 08. 2023

인간성과 문명이란 무엇인가

『파리대왕』이 던지는 질문

1954년 발표된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을 처음 접한 것은 무척 오래되었다. 1983년 윌리엄 골딩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자 표지에 “노벨 문학상 수상!”이란 띠를 급힌 두른 이 책이 서점마다 깔리기 시작했고, 어린 마음에 어떤 책일까 궁금해서 바로 사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노벨 문학상, 아카데미상 수상 작품에 대한 감상 열기가 요즘보다 더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로부터 몇 년의 간극을 두고 다시 읽고, 다시 읽었던 『파리대왕』은 유리처럼 깨어지기 쉬운 인간성에 대한 불신(?)을 되새기게 한 작품이다.


영국에서 피난을 위해 이륙한 비행기는 불의의 공격을 받고 추락하고 만다. (핵전쟁을 피해 안전한 장소로 이동하는 듯한 묘사가 나온다.) 무인도에 불시착한 한 무리의 소년들은 5세~12세 사이로 그들의 과거는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이들의 전형적인 캐릭터에만 집중되어 있다. 지도자적 기질을 갖추고 질서를 중시하는 랠프, 지성을 대표하는 피기, 예언자이며 순교자인 사이먼, 야만적이고 권력을 탐하는 잭, 잭의 하수인으로 말보다는 무력으로 상황을 진압하는 로저 등이 소설 『파리대왕』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무인도 생활 초반에는 랠프를 주축으로 제법 안정된 생활을 하던 소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구조가 요원해지자, 이들의 마음속에는 불안과 공포가 자리 잡으면 눈앞의 고기를 제공하는 사냥꾼 잭에게 의지하게 된다. 소라를 가진 사람이 발언권을 갖는 규칙은 깨어지고, 살육과 광기에 사로잡힌다. 이처럼 소년들이 인간성을 잃어가는 과정을 마치 한 편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한 『파리대왕』은 인간성과 문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가장 적나라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R.M. 밸런타인의 『산호섬』

윌리엄 골딩의『파리대왕』은 1857년 출판된 『산호섬』의 패러디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잭과 랠프라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한 것에서부터 산호섬에 조난당한 소년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돕고 잘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지나치게 밋밋하고 낙천적인 이야기에 대한 반감이 좀 더 신랄한 『파리대왕』을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산호섬』이 출판되었던 1857년은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며 세계를 호령했던 빅토리아시대이다. 이러한 시대 배경을 이해한다면 R.M 밸런타인의 저술은 나름대로 파격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은 처음 출판된 이래로 150여 년간 단 한 차례의 절판 없이 매년 출판되고 있다고 하니 진정한 고전임에 틀림없다.

작가의 이전글 냉동실에 아이스크림 대신 바나나와 고구마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