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정전에 대비하는 자세
점심시간에 국숫집에서 열무국수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갑자기 가게 조명이 꺼졌다. 사장님은 누전차단기를 확인하고, 이웃 가게들도 어수선해지는 걸 보고 ‘동네 전체가 전기 나갔나 보네.’ 하신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전기가 들어왔지만 여름철 전력난이 시작된 건가 싶어 조금 긴장이 되었다. 아직 6월이 다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정전이 발생하는 걸 보면 본격적인 여름에는 어찌 버티나 걱정이 되었다.
어린 시절 TV로 야구중계를 보다가 갑자기 TV가 꺼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전기가 나가는 타이밍은 절묘하게도 언제나 승부처에서였던 것 같고, 전기가 들어오면 경기가 확 기울어진 상황이라 김샜던 기억이 있다. 당시만 해도 전기공급이 안정적이지 않아 정전이 꽤 발생했고, 이런 상황에 사람들도 익숙해서 조금 기다리면 전기가 다시 들어오려니 하고 각자 할 일들을 했었다. 90년대 이후부터는 정전 사태가 거의 없었고, 한동안 전기가 갑자기 끊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이후 여름철 폭염으로 인해 에어컨 보급과 사용이 늘어나면서 전력 사용량도 폭발적으로 증가해 전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갑자기 정전이 되는 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여름철이면 직장에서 문서 작업하다가 자동저장이 되지 않아서 날려먹어 한바탕 난리가 나곤 했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사람들이 귀가해서 에어컨을 풀가동하는 저녁시간에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리는 일이 이젠 익숙해져 아파트에서는 여름철 저녁마다 전력공급이 원활치 않으니 에어컨 세기를 약풍으로 사용해 달라는 안내방송이 거의 읍소 수준으로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작년에 주택으로 이사 온 후 여름 내내 들어야 했던 안내방송을 듣지 않아서 좋고, 정전 사태가 발생하는 일도 없었는데 올여름 전력난은 심상치 않으려나 보다.
개인이 전기를 아껴 써봐야 얼마나 아낄까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기를 아껴 쓰려는 노력을 꽤 하는 편이다. 지난해에 비해 두드러지게 오른 전기요금에 대한 압박도 있지만, 꼭 필요한 게 아닌 전기제품은 되도록 쓰지 않으려 하고, 그러다 보니 멀티탭 없이 생활하고 있다. 멀티탭은 편리하긴 하지만 그렇게 믿을 만한 물건은 아니다.
허용전력량을 초과하여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므로 멀티탭은 허용전력량의 80% 이내에서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고, 권장 사용기간은 2년 이내라고 한다. 그런데 허용전력량을 계산해서 사용하거나 2년마다 멀티탭을 교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두 가지를 지킬 자신이 없어서 동시에 전기제품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차라리 멀티탭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멀티탭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 택한 방법은 간단하다. 전기제품을 동시에 사용하지 않고 시간차를 두고 사용하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는 방, 거실, 주방, 화장실에 2구 콘센트가 2개씩 있는데 화장실을 제외하면 12개를 가용할 수 있으니 멀티탭이 없어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방에서 노트북을 사용한다면, 핸드폰 충전은 거실이나 주방의 콘센트를 이용하는 식이다.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문명의 이기(利器)는 전기가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전기 사용을 자제한다는 건 그러한 문명의 이기를 포기한다는 걸 의미하는데 이미 수많은 전기제품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삶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전기를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사용하려면 조금은 자제하는 미덕을 발휘하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