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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Jul 11. 2023

초복, 하루종일 비는 내리고

오래전 물난리의 기억

1년 중 날씨가 가장 더운 “삼복(三伏)”의 시작인 초복(初伏)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일본 후쿠오카현에 집중호우로 하천이 범람하고 이재민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한 지 하루 만에 서울과 수도권에 호우경보가 내려졌다는 소식이다. 심지어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금천구청역 구간 열차 양방향 운행이 15분간 중단되었을 정도로 집중적인 무더기비가 쏟아지고 있다. 


잠시 비가 소강상태일 때 마트에 잽싸게 다녀오길 잘했다 싶을 정도로 비가 무섭게 내리고 있다. 장대비가 쏟아져서 ‘초복’이 무색하게 모처럼 더위에서 벗어나 선풍기를 켜지 않아도 지낼만하니 좋긴 한데 뉴스에서 비피해 소식을 들으니 걱정이 된다. 배수시설이 신통치 않던 80년대에는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말 그대로 난리가 났었다. 어린 시절 형편이 좋지 않았어도 고지대에서 살았던 덕에 집이 침수되거나 했던 기억은 없는데 같은 반 친구들 중 몇 명은 집안이 물바다가 돼서 학교로 피해왔던 적도 있다. 


가장 강렬한 물난리 기억은 1984년 9월이었던 것 같다. 9월 1일 하루 만에 서울에 268mm 비가 내려 기상 관측 이래 서울 1일 최고 강수량 기록을 경신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된 일이다. 당시 무릎까지 빗물이 차오른 길을 신나게 첨벙거리면서 학교를 가는데 등굣길 중간쯤 개천이 있어 매일 건너 다니던 다리가 무너져있는 모습을 보고 웃음기가 사라졌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무서운 거라는 걸 처음으로 깨닫게 된 날이었다. 


몇 년 지나지 않은 1987년 여름, 잠수교가 차오르는 장면을 속보로 중계를 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결국 13.7m 수위를 기록하면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엄청난 폭우였다. 당시 한강이 범람하면서 이재민이 20만 명이 발생하고 인명피해도 3백여 명에 이를 정도로 역사에 남을 만한 대홍수였다. 


이후에도 간간이 비피해가 있었지만 지난해 8월 서울 서초구 한 아파트 앞에서 중년의 남매가 맨홀에 빨려 들어 실종되어 3일 후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같은 날 강남빌딩 지하주차장에 차량을 확인하러 갔던 40대 남성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되었다가 지하에서 시신으로 발견되기도 했고, 관악구 반지하주택이 침수되어 일가족 3명이 사망한 뉴스를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웠다. 하천 주변에서 사고가 일어난 게 아니라 도심 한복판 강남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 힘들었다. 


오늘도 전국 곳곳에서 비피해로 인한 각종 사고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내일까지 200mm 이상 비예보가 있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 더이상 인명사고 소식만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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