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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Jul 13. 2023

장마가 영원히 끝났습니다!

‘장마’가 무엇인지 설명하게 될 미래

한반도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바뀌고 있다는 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상전문가들은 이제 우리나라에 내리는 집중호우를 ‘장마’라고 표현하기 어렵고 ‘우기(雨期)’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08년부터 기상청에서는 이미 공식 장마 시작일과 종료일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몇 년 전부터 일기예보에서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장마가 끝났습니다.”란 표현을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알게 모르게 ‘장마’가 사라졌고, 국어사전에 고어(古語)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니 섭섭함을 넘어 섬뜩하기까지 하다. 


장마가 우리 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5세기 이래 ‘한비’, ‘대우(大雨)’, ‘오란비(久雨)’ 등과 함께 쓰이던 ‘마ㅎ’가 16세기 들어 ‘댱마ㅎ’라는 단어가 등장하여 ‘오랫동안 내리는 비’ 또는 ‘오랫동안 비가 내리는 현상’이라는 의미로 널리 쓰이다가 ‘장마’로 변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국어에서 ‘장맛비’와 ‘장마’는 의미를 달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여름철 가장 비가 집중되는 기간’을 의미했던 ‘장마’를 더 이상 쓰기 어렵다고 기상학자들이 의견을 모으게 된 것은 ‘장마가 끝났다’라는 표현이 자칫 사람들에게 더는 큰 비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엘니뇨 등 기후변화로 ‘장마가 끝났다’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실례로 몇 년 전부터 서울과 수도권에 많은 피해를 준 집중폭우가 장마 이후에 발생하는 일이 거듭되었고, 10년간 여름철 강수패턴을 분석한 결과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한반도 기후가 아열대화하면서 장마 시작하고 긴 소강상태가 나타나다가 다시 비가 많이 오는 등 장마예보가 여름철 강수량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장마 예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상청의 설명이다.  


초등학교 시절 배웠던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라는 명제 역시 이제는 과연 그런가 의심이 들정도로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날씨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적도에 위치한 싱가포르에서 생활하면서 연평균 30℃가 넘나드는 기온임에도 시간이 지나 적응하며 살게 되었지만 내가 살던 우리나라의 날씨가 이렇게 바뀌어 버리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여름 한철 며칠 동안 비가 오다가 ‘장마 끝’ 선언과 함께 매미가 울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한반도의 여름은 사라지고 좀 더 기간이 길어지고 강수량이 늘어난 ‘우기’가 우리의 여름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하니 어쩐지 서글프다.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될 기후변화가 얼마나 빨리 어디까지 이어질까?  ‘장마’를 모르는 세대가 등장해서 ‘장마’가 무엇인지 설명하게 될 미래가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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