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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Jul 21. 2023

무차별 범죄에 내던져진 우리들

편견과 혐오가 피해망상으로 변할 때

2021년 도쿄 올림픽 폐막식 전날인 8월 7일 지하철에서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10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무직의 정부 보조금에 의존해서 살고 있는 범인 쓰시마 유스케(36)는 명문사립대를 중퇴 후 고립된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남들은 다 행복한데 나만 형편없는 복권에 당첨된 것 같다. 대학시절부터 자신을 무시했던 인기 있는 여성들이 싫어 잘 나가는 여성들을 죽이고 싶었다.”라고 진술해서 일본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이후 10월 31일 역시 도쿄 지하철에서 객실에 기름을 뿌려 방화하고 칼을 휘둘러 17명이 중경상을 입는 모방범죄까지 발생했다. 범인 핫토리 교타(24)는 영화 <배트맨>의 조커 복장을 한 채로 지하철에 타서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8월에 있었던 범죄를 참고해서 사건을 준비했다고 밝혔으며 “사람을 죽여 사형을 당하고 싶었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5월 26일 온라인 과외앱으로 여대생을 유인해 살해한 정유정(23)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 오늘 낮 오후 2시경 서울 신림역 인근에서 행인을 상대로 무차별 흉기를 휘둘러 20대 남성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치는 사건이 벌어졌다. 부상자 가운데 1명은 위독한 상태다. 범행 직후 현장에서 체포된 조모(33)씨는 폭행 등 전과 3 범이며 소년부에 14차례 송치된 전력이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조 모 씨에 대한 조사는 좀 더 이루어져야 정확한 경위를 알 수 있겠지만 무차별 범죄를 저지른 2030 젊은 범인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비관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가 아무 관계도 없는 불특정인을 공격하는 행태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들은 정신병력이 있다거나 외적으로 특별한 것이 없는 그저 평범한 청년들이라는 것이다.


‘무차별 범죄’에서 가장 큰 희생자를 남긴 사건이 20년 전에 있었다.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역 구내에서 50대 남성이 저지른 방화로 총 12량의 지하철 객차가 불에 타고 192명의 승객이 사망한 대구 지하철 참사가 그것이다. 이 사건의 범인 김대한(당시 56세)은 뇌졸중으로 인한 반신불수와 심한 우울증을 앓던 자신의 신변을 비관하다가 이런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언론에서는 낯선 범죄 형태에 대해 마땅한 단어를 생각하지 못하다가 당시 사회문제였던 ‘묻지 마 관광’에서 따온 ’ 묻지 마 범죄’라는 이름을 붙여 오늘날까지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러나, ‘묻지 마’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범인의 입장으로 붙여진 명칭이라 경찰청에서는 ‘이상동기 범죄’라고 고쳐 부르기로 했지만, 언론에서는 여전히 ‘묻지 마 범죄’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다. 무고한 피해자, 사건의 파장이나 책임을 고려할 때 ‘묻지 마 범죄’라는 가벼운 명칭은 어울리지 않지만 직관적이고 쉬운 작명이라 고쳐 부르기 쉽지 않아 보인다. 


소외되고 절망에 빠진 청년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포용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형태의 범죄는 계속 벌어질 것이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나, 거리를 걸을 때에도 주위에 수상한 사람이 있는지 두리번거리면서도 눈이 마주치는 건 필사적으로 피해야 하는 세상에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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