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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Jul 26. 2023

여기가 싱가포르인지, 한국인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우리의 여름

1년 내내 덥고 습한 싱가포르에서 6년 동안 살면서 날씨 때문에 고생을 한 기억이 있다.  싱가포르에 대해 뜻밖에 좋은 인상을 받았던 건 백화점과 대형쇼핑몰마다 꽤 규모가 큰 대형서점이 입점해 있는 것이었다. 백화점 밀집지역인 오차드 거리에 있는 백화점 다케시마야 4층에 키노쿠니야라는 대형 서점이 있고, 아이온 2층 파퓰러, 휠록 플레이스 지하 1층 보더스 등이 있는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보기 좋았다. (아쉽게도 지금은 문을 닫은 곳이 많다고 한다.)우리로 따지면 명동 롯데 백화점이나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에 교보문고가 입점해 있는 셈이다. 동네마다 있는 대부분의 쇼핑몰에는 파퓰러라는 서점이 입점해 있다.

도서 가격도 비싸지 않아 싱가포르 생활 초반에는 책도 꽤 여러 권 구입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서는 책을 사면 안 되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는데 새책을 사도 몇 달 지나지 않아 책에 곰팡이가 생기는 걸 확인하게 된 것이다. 깨끗한 새책에 거뭇거뭇 까만 점이 생기면서 금세 책 전체에 곰팡이가 끼는 걸 보니 책 살 마음이 사라졌다. 에어컨을 24시간 풀가동을 하면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에어컨 바람을 계속 쐬는 것도 고역이다 보니 잠시 꺼둘 때도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어떤 책이든 곰팡이를 피해 가기 어려웠다.

곰팡이가 슬어버린 책을 볼 때마다 속상한...

싱가포르에서 생활한 지 6개월이 지났을까? 언젠가부터 왼쪽 귀가 꽉 막히는 느낌이 들어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의사가 무심히 진단을 내렸다. “네 귀속에 곰팡이가 생겨서 그런 거야. 제거해 내면 괜찮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곰팡이라고? (fungus)?” 되물었더니, “응, 여기서는 흔한 일이야. 날씨가 습하잖아. 이거 금방 빼내면 돼.”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살다 살다 귀속에 곰팡이가 생기다니 의사의 지시대로 귀를 내줬더니 액체 같은 걸 귀속에 살짝 흘린 후 문제의 fungus를 끄집어내서 내게 보여주면서 이제 됐단다. 정말 답답하던 귓속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그 후에는 다시 귓속에 fungus가 생기는 일은 없었는데 이번엔 눈에 문제가 생겼다. 눈물이 계속 나고, 시야를 가릴 정도로 눈곱이 끼는 것이다. 안과에 갔더니 결막염이라는데 이것 역시 날씨와 관련이 있었다. 덥고 습한 기후가 몸에 미치는 영향이 이처럼 지대한 거였는지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환경 변화로 인한 일시적인 이상 증세를 겪은 후 몸이 적응이 되었는지 6년 동안은 건강에 별문제 없이 무사히 지냈지만 처음엔 이 나라에서 계속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할 수 있게 지어진 싱가포르의 전형적인 숍하우스

그런데, 오늘 날씨가 딱 싱가포르 같았다. 소나기가 퍼붓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이 쨍하게 나와서 다 말려주고, 다시 소나기가 쏟아지고, 햇빛이 나오는 게 반복되는 습하고 변덕스러운 날씨였다. 오전에 장마가 끝났다고 판단한다는 기상청의 발표를 보고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가 매미 울음소리가 요란하길래 정말 장마가 끝났다보다 싶었더니 갑자기 장대비가 내렸다. 비를 피하러 카페에 들어갔더니 다시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고, 다시 비가 오는 것이 반복되었다. 동남아시아의 여느 도시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정말 맞나 싶었다. 


갑작스러운 날씨변화 때문에 잊혔던 싱가포르에서의 과도기 시절이 떠올랐고, 우리나라 여름 날씨가 싱가포르처럼 변한다고 생각하니 영 마뜩잖았다. 찌는 듯한 더위에도 가끔 시원한 바람이 불던 어린 시절의 그 여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서운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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