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sary Aug 19. 2023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더니…

범죄자가 늘어놓은 변명을 대중에게 전달하지 말아야...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주장은 최근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경찰과 범죄 전문가들은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이런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그들은 과연 언행일치를 하고 있을까. 8월 17일 오전 11시 40분쯤 신림동 등산로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 피해자 A 씨가 사건 발생 이틀 만에 숨졌다. 30대 남성 최 모 씨가 금속재질인 너클을 양손에 끼고 A 씨를 무자비하게 때리고 성폭행하는 과정에서 의식을 잃어 응급실로 이송된 후 결국 의식을 찾지 못하고 사망한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대낮에 벌어진 성폭행 사건인 데다가 작정하고 잔혹한 범행수법을 실행한 것이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접하면서 경찰과 언론이 사건을 대하는 부주의한 태도에 아연실색하고 있다. 사건 발생 직후 피해자가 초등학교 교사라고 공개해 버리더니, 하루 만에 피의자가 성관계를 해본 적이 없다는 변명을 그대로 전달해 참혹한 범죄를 자극적인 입방아거리로 만들고 말았다. 범죄자의 한마디에 엉뚱하게 성매매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온라인에서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보자니 어처구니가 없다.  


사건 관련 윤리지침을 외면한 일부 기자들의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차치하더라도, 범죄사실과 직접적인 관련 없는 범죄자가 자기변명을 위해 지껄이는 말들을 경찰이 언론에게 흘려 기사화되도록 한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실 확인이 불가능한, 그저 범죄자가 진술한 변명을 여과 없이 언론에 공개한 무책임하고 몰상식한 결정은 국가 사회의 공공질서와 안녕을 보장하고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경찰이 할 일인지 묻고 싶다.


과연 자신들의 가족이 피해자였어도 범죄자의 일방적인 주장이 기사화되도록 조장, 방치했을까? 도심에서 대낮에 건실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20대의 젊은이가 잔혹한 범죄에 희생되어 하루아침에 생을 마감했다. 결코 가벼운 가십거리로 소비될 수 없는, 소비되어서는 안 되는 매우 심각한 중범죄인데 경찰은 언론과 대중의 반응이 어떨지 예측하지 못했다는 변명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신림역 인근에서 벌어진 무차별 흉기난동 이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전국에서 흉기난동 사건과 협박이 연이어 발생하는 치안비상시국이다. 국민들을 보호하고 안심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경찰이 국민불안을 조장해서야 되겠는가. 좀 더 사려 깊고 신중한 수사와 보고를 진행해 주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ICQ가 그리워지는 요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