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sary Aug 18. 2023

ICQ가 그리워지는 요즘

소통을 원한다면서 일방통행만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

브런치에 매일 글을 올리긴 해도 카톡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친구들과도 안부를 묻는 일 외에 카톡으로 수다를 떠는 일은 거의 없다. 유유상종이라고 해야 하나. 대화하다가 끊겨도 그냥 그러려니 잊어버린다. 그렇다고 나와 내 친구들은 서운해하지 않는다. 잊어버릴 수도 있지 하고 또 몇 달쯤 있다가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한다. 그런 내가 도서관의 문화강좌를 듣는데 강사가 카톡방을 통해 공지내용을 전달하고 거기에 수강생들이 득달같이 다다다다 댓글 달고 하는 시스템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일상의 모든 걸 카톡방을 통해 전달하고 공유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세상인데 나는 이런 세상이 반갑지 않다.


나의 첫 번째 메신저는 ICQ였다. ICQ가 뭔지 안다면 아마 연식이 좀 있는 분들일 것이고,  2030들에게는 생소할 것이다. IT 회사에 다녔던 터라 인스턴트 메신저의 시조새인 ICQ를 사내 메신저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접하게 되었는데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전화나 이메일 없이 업무 전달과 지시를 할 수 있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데다가 결과물을 파일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게 너무나 편리했다. 이후 국내 메신저인 버디버디나 네이트온 등을 사용할 때까지만 해도 퇴근 후 저녁이 있는 삶은 대체로 보장되는 편이었다. 메신저는 대체로 업무용으로만 사용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 생활할 때 카카오톡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해외생활하는 사람에게 거의 혁명 같은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해외 여기저기 흩어져사는 친구들과 바로 옆에 있는 듯이 대화하고 근황을 공유하는 것이 편리하고 즐거웠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를 슬슬 느끼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용건이 급하건 급하지 않건 자기들이 생각날 때 밤낮없이 카톡을 보내고 즉각적인 답변을 하지 않으면 짜증을 내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고백하자면 카톡 초창기 ‘1’의 의미조차 몰랐을 정도로 사람들의 카톡 조급증에 적응이 안 되었다.


카톡을 왜 빨리빨리 안보냐는 핀잔을 듣는 일이 많아졌다. 제일 힘든 건 업무적인 소통을 할 때였다. 직장 상사나 거래처 사람들이 자기들 생각날 때 카톡을 휙휙 보내곤 하는데 휴일은 물론이고, 오밤중이나 새벽시간도 자유롭지 않았다. 한참 꿀잠을 자고 있을 때 그놈의 “까똑! 까똑!” 소리에 잠을 설치기가 일쑤였다. 직장생활을 할 때 자정부터 아침 8시까지는 무음으로 설정해 놓는 버릇이 생겼고, 요즘에는 그냥 주욱 무음 모드다.


예전에는 너무 늦은 시간, 너무 이른 시간에 연락하는 게 실례라는 암묵적인 예절이 있었지만 카톡이 시작된 후 그런 게 전부 깨져버린 것 같다. 최근 초등학교 교사들의 교권 침해 문제를 들여다보면 학부모와의 카톡방을 통해 1년 365일을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행태가 대수롭지 않게 일어나는 모양이다. 교사가 아니라 집사가 되어 학부모들의 이런저런 불평불만을 일일이 응대해야 하는데 교사 본연의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싶다.


그렇지 않아도 성질 급한 한국인에 카톡문화까지 더해지니 재촉과 안달만 늘어가고 아량과 여유는 줄어드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소통을 원한다면서 일방통행만 가속되는 현실이 야속하다.

작가의 이전글 암 걸릴 것 같다고? 치매 온 거 아니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