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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Aug 17. 2023

암 걸릴 것 같다고?
치매 온 거 아니냐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봤으면...

야구팬들이 제일 답답할 때는 주변에 야구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이 없으면 야구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한다고 해도 공감을 얻지 못할 때다. 우리 동네 단골빵집 사장님과 친해지게 된 계기가 바로 ‘야구’ 때문이었다. 가게에 장원준, 박건우 등의 사인볼과 굿즈를 예쁘게 진열해 뒀는데 그걸 알아보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가까워진 것이다. 물론 사장님은 곰팬이고, 나는 쌍둥이팬이지만 주변에 야구팬이 없는 우리는 답답한 속내를 서로 털어놓으며 친해졌는데 야구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할 때도 있었다. 


나처럼 운 좋게 야구팬이 가까이 있으면 오프라인에서 실컷 수다를 떨 수 있지만, 야구 이야기를 할 상대가 없는 야구팬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서식하면서 정보도 얻고, 깊이 있는 이야기도 나눈다. 물론 트래시 토크도 난무하다. 혼자 야구 경기를 보는 사람들은 커뮤니티를 하면서 보면 훨씬 재미있게 경기를 보기 때문에 야구 커뮤니티는 중계시간에 가장 활력을 띤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고, 경기에 대한 몰입이 지나쳐 감정이 격해지다 보면 온갖 과한 표현과 막말이 오고 가는데 치명적인 병명을 소환해서 자신들의 답답함을 드러내는 걸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암 걸릴 것 같다. 발암야구 한다.”는 이제 너무 흔하게 나오는 말이고, “감독이 치매 온 것 같다. 뇌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 등등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깨닫지 못하고 내뱉는 듯하다. 


커뮤니티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이런 표현들을 쓰는 사람들을 종종 보는데 예전에도 아주 사소한 짜증스러운 상황에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쓰는 게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솔직히 대수롭지 않게 들렸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암투병을 하고, 완치에 이른 몇 년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너무 쉽게 “발암”이라는 말을 내뱉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 사람은 아직 주변에 암환자가 없나 보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말을 가볍게 하는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다. 이건 정말 자신이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일상에서 별생각 없이 “발암”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심지어 언론에서도 심심치 않게 사용하는 걸 보면 말과 글의 무게를 한없이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가 싶어 낙담하게 된다. ‘암’과 ‘치매’라는 질병이 자신들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해서 사용하나 싶다가도 국가 암등록통계(2021년)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이 기대수명(83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7.9%로 추정할 정도로 자기 자신과 가족 중 누구라도 자유로울 수 없는 유병률이 높은 게 암이다.


중앙치매센터 (2022년)에 의하면 국내 65세 이상 노인 총 858만여 명 중 89만여 명이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치매 유병률은 10.33%에 달한다. 그 누구도 암과 치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다. 아니, 지금 같은 추세로 초고령 사회로 빠르게 진입한다면 암과 치매 환자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짜증이 나도 “암 걸릴 것 같다”느니 “치매 온 거 아니냐”느니 하는 말을 생각 없이 내뱉는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관용적 표현인데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고?  왜 하필 무서운 질병으로 짜증을 표현해야하는지… 그런 관용적 표현은 좀 다른 말로 대신하면 좋지 않을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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